연일생은 태생이 도시에서 나고 자란 도시쥐라 그 반향으로 시골에 대한 로망이 조금 있었는데요, 그 중 대표격은 마당이었답니다.
손이 많이 가고 보안이 신경쓰인다는 현실적 이유 혹은 신포도식 합리화를 거쳐 점점 사라져만 가던 로망은 독일에 온 이후로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는데...
독일은 오히려 스튜디오가 드물지 않습니까? 기숙사 생활하는 사람 아니면 거의 WG로 살더군요. 그 중 구역을 나눠 가드닝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구요. 직장동료인 머니가 홈파티에 초대를 해서 놀러갔는데, 마당에 보이는 신기한 물건.
벌 호텔Insektenhotel 이랍니다.
속이 빈 갈대나 구멍을 뚫은 나무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구멍마다 벌 유충 한 마리가 살 수 있어요.
드문드문 회색으로 막혀 있는 부분이 벌이 알을 낳아 둔 방입니다.
(이 입구를 막는 것도 벌마다 사용하는 재료가 달라서 벌의 종류를 추정하는 데에 쓰이기도 한다는군요. 누구는 수지, 누구는 진흙을 쓰고, 누구는 잎이나 식물 섬유 등을 사용한대요.)
Q. 그런데 벌은 벌집 짓고 다같이 살지 않나요? 유충은 누가 돌봐주나요?
벌은 무리생활을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세계 꿀벌의 75% 이상은 외로운 벌solitary bee이라고 합니다(Danforth et al., 2019).
GPT피셜, 벌 호텔의 대표적인 손님은 벽벌Mauerbienen 혹은 가위벌Scherenbienen로, "여왕벌도 없고, 일벌도 없"으며, "암컷 한 마리가 혼자서 자기 둥지를 만들고, 꽃가루와 꿀을 모아 각 방에 저장한 뒤, 알을 하나씩 낳고 문을 막아버리는 식"으로 산다고*.
실제 생태 보호에는 양봉벌보다 이런 외로운 벌들의 영향이 더 크다고 하네요.
외로운 벌은 군집 생활을 하는 벌과 달리 먹이 볼 위에 알만 낳아놓고 떠나면 유충이 알아서 큰대요. 신기하다! 어릴 때 본 벌 관련 동화책이나 아동과학서에서는 일벌이 육각형 집 짓고 애벌레 돌봐 주는 내용만 나오던데.
Q. 그런데 마당에 이런 걸 두면 안 무섭나? 한국이라면 있는 벌집도 사람 불러 없애버렸을 텐데?
독일에는 우리나라의 장수말벌 같은 치명적인 벌이 거의 없어 벌을 무서워하지 않더라구요. 한국에도 꿀벌 정도는 안 무서워하는 사람도 꽤 많지만, 아무리 그래도 얼굴에 붙으려고 날아오면 피하는 정도는 하던데, 독일인들은 그냥 내버려두다가 손으로 대충 쫓습니다. 무슨 날파리 날아오는 마냥...
더하여 독일은 생태 보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크니깐요. 이런 물건도 취미로 두는 모양이에요. 신기하다!
저는 한국에서 꿀벌(추정)에게 쏘인 적이 있어 벌 있으면 멀리멀리 돌아서 가는 사람. 하지만 호박벌은 좋아해요. 통통하고 보송보송하고 날갯소리도 낮은 저음으로 웽웽거리고, 얌전하고 느릿느릿한 게 너무 귀엽죠. 그래서 만약 마당이 있다면 Hummelhaus를 둘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큰 따옴표 안은 GPT의 언급을 그대로 인용
보송보송한 호박벌은 집도 보송보송한 걸 좋아한대요... 귀엽다... 안에 깃털이나 개털, 고양이털, 이끼 같은 충전재를 둔다고...
2-3월의 이른 봄에 설치하면 여왕 호박벌이 새 집을 찾아 날아다니다 들어올 수도 있다고 합니다. 설치해두면 정말 두근두근하겠네요. 오늘은 들어오려나, 안 와주려나! 매일 기웃거리는 미래가 벌써 상상이 됩니다.
호박벌이 좋아하는 꽃을 마당에 심으면 와줄 확률이 높아지겠죠. 호박벌이니까 당연히 좋아하는 꽃은 호박!
독일 식물은 잘 몰라서 이것도 GPT에게 물어본 결과 다음의 꽃이 호박벌에게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이른 봄 | 크로커스, Lungenkraut, Winterling, 설강화 |
봄~초여름 | 민들레, 세이지, 라벤더, Borretsch |
여름~가을 | Phacelia, Sonnenhut, 아욱, 백리향 |
*검토 안 한 내용입니다. Crosscheck는 각자 알아서.
계절별 심기 좋은 꽃들을 나타낸 캘린더도 해마다 나오니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러고보니 최근 생긴 저의 마당 로망 중에는 Chaos gardening도 있었죠.
원하는 꽃이나 작물을 구획에 맞추어 심고 다른 잡초가 자라지 않게 하는 일반 가드닝과 달리, 꽃씨를 마구 섞어서 흩뿌린 후 제멋대로 자라도록 하는 가드닝이라고 하네요. 우리나라는 주로 숏폼에서 MZ하다며 유행하는 것 같은데, 이게 꿀벌을 먹이기에도 좋은 방식이라고 해요. 단일종 재배보다 꽃꿀의 종류도, 개화 시기도 다양하니까 벌들이 져야 할 리스크가 적은 게 아닌지.
저는 원래 정갈하게 구획된 서양 정원보다 이것저것 조화롭게 배치된 동양 정원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가드닝도 이런 게 더 멋져 보이네요. 힙하고...! 들꽃은 원래 섞여 자라는 게 더 예쁘기도 하고, 오늘은 어떤 꽃이 발아할까 기대되기도 할 것 같아요.
Wildbienen-Mischung 라는 패키지를 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야생 꿀벌들이 좋아하는 꽃의 씨앗 혼합물이에요.
마지막 로망, 버드피딩.
말 그대로 새들에게 밥을 주는 행위입니다. 이건 꽤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로망이에요. 모이통을 걸어 놓고 잘 먹나 지켜볼 수 있다니, 너무 멋진 일이죠. 새들에게 도움도 되고 난 구경도 할 수 있고.
Q. 그런데 정말 새들에게 도움이 되나요? 야생성을 해치거나 생태계를 교란하지는 않나요?
중요한 고려 사항입니다. 독일 환경단체 NABU의 버드피딩 가이드라인을 읽어 볼까요.
Tipps zur Vogelfütterung - NABU
Soll ich überhaupt Vögel füttern? Und wenn ja, welcher Vogel frisst was, was sollte ich beim Füttern beachten, kann ich Vogelfutter auch selbst herstellen? Wir geben Ihnen viele Tipps und Informationen rund um die Vogelfütterung.
www.nabu.de
내용을 옮겨오자면 이렇습니다.
- 멸종위기종 조류 보호에 유의미하게 큰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오히려 살충제 줄이기, 수확 후의 들판 방치하기 등이 더 효과적).
- 하지만 11월-2월 겨울철에는 권장된다.
- 부드러운 먹이 선호종, 딱딱한 먹이 선호종, 잡식성이 있으며, 그에 알맞은 먹이를 주어야 한다. 빵은 주지 말 것.
- 시중의 먹이 믹스를 사서 급여할 시 구성을 확인하고 밀(새들이 선호하지 않아 바닥에 쌓이게 되어 위생에 좋지 않음)이 너무 많거나 외래종이 함유되지 않았는지 확인할 것.
- 하지만 가능한 먹이 믹스보다는 내 정원의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좋음. 먹이 믹스를 생산하려면 어딘가에서는 그 재료를 재배해야 하고, 농사는 결과적으로 새들의 서식지를 빼앗기 때문.
- 4-7월 이소시기에는 서툰 새들이 많아 질식 및 집단 감염 등의 위험이 있음. 주의가 필요.
- 위생과 부패에 주의(뜨거운 물과 전용 세척도구로만 세척, 매일 적은 양의 신선한 모이를 공급).
- (새들이 머리를 박을 가능성이 있는)유리창 가까이 두지 않을 것.
- 고양이 등의 천적, 쥐나 다람쥐 등의 도둑이 접근하지 않는 위치에 모이통을 둘 것.
결론적으로 올바른 방법으로, 해를 끼치지 않게 주의해서 해야 하는군요.
신경쓸 것이 정말 많지만 새를 좋아해서 하는 일이라면 당연히 새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도록 노력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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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기까지 도시쥐 연일생의 마당 로망 필리버스터였습니다. 호박벌 집, 카오스 가드닝, 버드피딩.
한동안은 현재 studio에서 살 예정인데, 집을 옮기게 되면 마당이 있는 곳이 어떨까 꿈꿔보게 되네요. 정원은 플랫메이트들이 구역 나누어서 쓰려나. 호박벌 집 설치하는 것도 허락해주면 좋겠다... 겨울에 새 모이 두는 것도 허락해주면 정말 정말 좋겠다...!
자연과 함께 사는 행복한 생활을 조금쯤 꿈꾸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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