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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생 종합도서관/에세이 도전기4

큰이모를 회고하며 큰이모는 5년간의 뇌졸중 투병 후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심박수를 측정하는 기기가 박동을 멎을 때, 표정 없이 차분하게 서 있던 언니의 눈에서는 당연한 듯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큰이모의 침대를 둘러싸고 서서 눈물을 흘리고 서로를 위로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내게는 전부 멀게만 느껴졌다. 몹시 이상한 기분이었다. 내 마음은 글쎄, 무거웠지만, 동시에 아주 길고 무척 고요한 불행의 끝을 마침내 본 듯도 했다. 지난 5년간 어머니의 삶은ㅡ흔한 표현으로ㅡ창살 없는 감옥살이였다. 전자기파가 몸에 나쁘다며 TV를 보고 나면 환기를 시키던 어머니는 매일 밤 베개 밑에 핸드폰을 넣고 잤다. 월, 수, 금요일에 간병사에게 지급할 돈을 벌고 나면, 화, 목, 토, 일요일에는 직접 큰이모를 돌봐야 했다. 내가 기억하는 그 .. 2025. 2. 5.
에어컨의 시혜 기사님께서 연구실에 가스통을 끌고 오셨다. 찌는 더위에 성인 남성의 몸집만한 쇳덩이를 끌고 몇 층을 오르시고는, 문턱에 서서 가쁜 숨을 내쉬며 말씀하셨다. '야아, 여긴 천국이네요. 안 나가고 싶은데요.' 거친 사투리와 유쾌한 웃음이 섞인 그 농담이 무겁게 심장에 박혔다. '조금 앉아있다 가세요.' 권유는 진심이었지만, 기사님 본인에게는 별 의미 없는 말이었는지 가볍게 손사래를 치시고는 본인의 일자리로 돌아가셨다. 과학을 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무수히 많은 낭비를 동반한다. 불순물이 포함되지 않도록 수어 번 세척한 플라스틱을 다시 고압멸균기에 가열하고는, 정작 사용은 한 번 하고 버린다. 하루에 몇백 개씩, 많으면 천 개에 달하는 수가 소비된다. 기기는 항상 낮은 온도를 유지해야 하며, 부품의 손상을 막기.. 2024. 8. 16.
230330 어제, 나의 연구과제 전반을 맡고 계시던 post-doc 박사님께서 연구실을 떠났다. 이 분야에서 미국 2~3위에 달하는 대학에 적을 두게 되었다니 박수를 몇 번이고 쳐도 모자랄 일이다. 그는 내가 연구실을 들어왔을 적, 아무것도 모르던 학부생 시절부터 항상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가 맡고 있던 연구과제의 한국인 책임자 자리가 내게 돌아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함께 일을 했다. 답이 보이지 않는 데이터 더미에서도 최고의 논문을 뽑아내는 실력과 반대로, 실험을 주도하고 뒷일을 감당하는 데에는 영 재주가 없던 그는, 그러한 점 때문에 나의 사수 선배와 잦은 마찰이 있었다. 그녀보다도 좀 더 인내심이 없는 후임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나와 그는 꽤 잘 맞는 실험 파트너였다.. 2023. 3. 30.
에세이 도전기: 1. Grey Zone I want you so much closer than thisBut we are so much better when we are not together -Grey Zone, NELL  바라고 지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지치는 걸 숨기는 일은 더 피곤한 일이다.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외로움이 많은 나는 그런 점 때문에 때로는 좁고 때로는 넓은 인간관계를 맴돌며 살아왔다. 지금도 나는 가끔씩 바라고, 그것에 지나치게 괴로워한다. 입시를 준비할 때 알게 된 친구가 있었다. 좁은 시야각을 가진 고등학생이 으레 그러하듯 나는 사람의 한두 가지 면에 반해서 그리 가깝지 않은 거리감의 친구를 동경하게 되었고, 그와 어울려 다니던 사람들 역시 자연스레 그 동경의 반열에 올랐다. 그렇기에 처음 그 아이가.. 2020.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