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비해 턱없이 적은 독서량이 부끄러워 쌓일 때까지 묵혀두고 있었는데요...
미루고 미루다가 더이상 미루면 안 올릴 것 같아서 그냥 기록하기로 함
이게 아버지의 해방일지 나오던 즈음부터 읽은 양이니까 2년 3개월...? 내가 2년 3개월 동안 책을 20권도 안 읽었어...?
1. 아버지의 해방일지(완독)
눈물콧물 쏙 빼면서 읽은 유쾌한 자전적 소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하나의 입장에도 개인의 수많은 사유가 있고, 개중 어떤 것은 잘났고 어떤 것은 못난 평범한 사람의 집단이라는 게 재미있다.
2. 데이터는 어떻게 인생의 무기가 되는가 -정체 중-
데이터과학자로서 제목이 흥미로워서 읽기 시작했는데 뭔가 미국비즈니스맨비문학의 향이 진하게 나서 미루는 중. 흥미로운 사실 위주로 말해주지만 결국 이 책을 관통하는 통찰이 뭔지 물어보면 애매한 그런...깔끔하게 차려 입은 백인 미국인 남자가 웰컴투마이텓톡에서 말하는 것 같은 본질 없는 비즈니스비문학...그런 장르다. 싫다는 건 아니고 그냥 내가 이런 장르가 속도가 잘 안 난다.
3. 소프트 스킬 -정체 중-
명저라고 생각함과 별개로 볼륨이 너무 무거워서 아주 느리게 읽는 중. 한국에서 실물 책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건너올 때 본가에 유기하고 와서 언제 읽을지는 무기한 연기이긴 합니다...
4. 마당이 있는 집(완독)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 두 여자의 시점을 오가며 엮어 놓은 점이 매력적이다. 억압당하고 부정당하며 살아온 화자는 작품 내내 스스로를 의심하며 추리를 전개하고,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폭발한다. 두 시간 정도 영화처럼 즐겁게 읽은 이야기.
5. 하루 10분, 전자책으로 월급 벌기(통독)
아빠가 읽으라고 해서 읽었는데, 요즘 이런 부업 붐 너무 심하지 않니?! 별개로 작은 출판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보고 출판의 꿈도 있기 때문에 즐겁게 읽었습니다.
6. 100초 정치사회 수업(완독)
그냥 기본서가 필요해서 읽었다. 잰체하며 정치에 대해 떠드는 사람 중 정치의 기본 원칙과 골자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성찰해보게 되는 요즘이다...이는 또한 자기반성적 발언이며...
7. 지구 끝의 온실(완독)
독특하게도, 지나온 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상을 추적해가는 과정을 생명과학에 접목해 전개한다. GWAS를 이용해 야생식물의 원종이 어디에서 기원했고 어떤 경로로 퍼져나갔는지 tracking 함으로써 과거 사건을 밝힌다니 이 무슨 낭만이람...! 읽다가 너무 두근거려서 잠깐 덮고 감정을 갈무리하길 여러 번이었다. 생명과학도라면 꼭 이걸 읽어야 한다.
'지금 소설을 읽고 있는데, 연구소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생자원관에서 식물 샘플 인계받아서 다음주까지 분석 결과 줘야 하는데, 샘플 받은 건 수요일이고, 마침 보고서 시즌이라 공실관 기기 예약 가득 차서 사유서 쓰고 밤에 기기 예약한 다음, 밤새 WGS랑 VOC 분석 프렙하고 로딩하고 새벽에 퇴근했다'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더니 전원 '그거 네 일기나 꿈 아니고 소설 내용이 맞냐'라고 반응했던 기억... 어떻게 분석도 WGS랑 VOCs analysis...?
8. 도둑맞은 집중력 -정체 중-
정보의 설득력 그 자체보다는 서술 방식이 무척 흥미로웠다. 저자는 좋게 말하면 굉장한 달변가고 나쁘게 말하면 뛰어난 선동가다. 서론에서 저자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흔한 에피소드로 시작해 이것이 사실은 자신을 포함해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므로 이 책을 저술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후, 이것은 사회적 문제이며 '우리 문제가 아닌 이유로' 집중력을 '빼앗기고 있다'며 영리하게 독자를 다독인다(이 때 '외부로부터의 공격'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무척 인상깊었다.). 집필 목적이 끝난 후에는 이 책이 다른 집중력 향상용 자기계발서와 다른 점을 설명하고, 이 책에서 다루는 고찰이 갖는 세 가지 중요성을 강조한다(보편적인 논문 혹은 비문학의 포맷).
요즘 같은 스마트폰 중독의 시대, 성인 ADHD도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시대에 '네 잘못이 아니고 사회 탓이니까 한 번 알아보자'라는 말에 매료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어느 누가 어떤 나쁜 것으로부터 '도둑맞은', '원래 내 것인' 집중력을 '되찾아오자'는 제안에 혹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절반까지 읽었다가 노트 필기하며 좀 더 진지하게 읽고 싶어서 멈췄는데, 그 뒤로 방치 중. 역시 비장해지면 잘 안 읽힌다... 대충 완독하는 것을 목표로 다시 읽어봐야겠다.
9. 카메라, 시작해보려 합니다(완독)
만화로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DSLR 입문서. 핸드폰 카메라로 찍는 나 같은 사람도 배울 점이 많다.
좋았던 팁:
알고 있었던 것
- 3요소: 배경흐림, 밝기, WB
- 주인공과 배경을 구분
- 물건을 찍는 팁: 역광을 찾은 후 밝기를 높임
- 물건이 둘 이상 있을 때에는 대각선 배치
- 하늘은 순광
- 시선 앞에 여유공간을 두기
- 배경이 데크라면 사선으로 잡기 추천
몰랐던 것
- F값을 작게, 배경흐림 ☞ 빛망울
- F값을 크게 ☞ 플레어
- 흔들림을 이용할 수도 있다.
- 야외 사진은 역광+피사체 아래 or 순광+위
- 반신 사진은 머리 위 공간을 최소화
- 실내 상품샷은 반사판 활용: 빛이 모자랄 시 구겼다 편 은박지, 광택에 빛이 과하게 비칠 시 까만 종이
10, 11, 12. 결혼 책 3종
사연: 불친절 만화가 영업당함→대표작 <500만 원으로 결혼하기>가 궁금해 중고서점에서 구입→판매자분께서 기재된 것보다 상태가 안 좋다며 결혼 관련 서적 2개 덤으로 주심→집에 결혼 관련 서적이 3권임→졸지에 결혼에 미친 여성 됨→읽고 버려야겠다는 결론에 이름
<500만 원으로 결혼하기>
역시 재미있었다. 결혼 그 자체보다는 우리 같은 소시민의 삶과 인생의 동행에 대해 조명해 줘서 좋았다. 불친절 님과 노키드 님 둘 모두 보편적인 결혼식의 틀을 따르면서도, 그것을 완전히 긍정하지는 않는 점이 매력적이다. 결혼식은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는 이렇게 결혼했다>
옛날 책이기도 하고 결혼식 자체를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스탠스라(저자가 웨딩플래너이시다 보니) 80%는 그냥 흘렸다... 장소 섭외, 서류 처리, 개같은 수합(킹합), 그 모든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가격비교 품질비교 옵션비교 업무를 보아하니 대학원 잡일과 크게 다를 바가 없군요^^ 이전 연일생이 저술한 결혼식=디펜스 설을 강화한다. 아하! 결혼준비는 학위과정이구나
많은 지식 중 건진 유용한 사실 몇 가지
- 신혼여행 시 기념품 선물할 사람 리스트를 만들어 두는 게 좋다.
- 예식장은 공간과 인원, 주차 공간, 신부 대기실 크기, 음식을 보는 게 좋다.
- 부케로 인기 많은 꽃은 작약, 수국, 은방울꽃, 히아신스, 호접란, 튤립, 카라 등이 있다.
- 일반적으로 결혼 예산에는 식장, 상견례, 스드메, 신혼여행, 양가 부모님 드릴 예복 한복 예단, 예물, 청첩장, 촬영비, 사회 및 주례, 식전 영상, 연주 및 축가, 폐백 이바지 답바지 함, 부케, 웨딩카, 건강검진, 신혼집 및 혼수, 직장 답례품, 피로연, 버스 대절비 등이 든다.(ㅅㅂ..) 이러니까 집이랑 혼수 제외해도 한국 평균 5000만 원이 든다는 거군요 (불친절 et al., 2012)
- 결혼은 정 말 피곤한 거구나
<천만 원으로 혼할 수 있을까?>
앞선 사연으로 인해 얻게 된 두 권 중 나머지 한 권. 같은 판매자한테 받은 건데 책을 펴자마자 앞선 책이랑 스탠스가 너무 달라서 너무 웃기고 마음에 쏙 들었다. 아니 중고거래 판매자분, 이런 식으로 정반합을 추구하시는 건가요...? F남편 T아내 모먼트가 너무 웃겨서 환장하겠음ㅋㅋㅋ
[웨딩드레스 고른다고 별 난리를 다 치지만 예식장에서 하객이 신부를 보면 하는 생각은 '아 저 사람 웨딩드레스 입었네'가 전부다]라는 대목에서 무릎을 탁 쳤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13. 변신(완독)
놀랍게도 카프카 작품을 <학술원에의 보고>밖에 읽어본 적이 없었다. 미르북컴퍼니의 단편집인데 <판결>, <변신>,<시골 의사>, <갑작스러운 산책>, <옷>, <원형극장의 관람석에서>,<오래된 기록>, <법 앞에서>, <학술원에의 보고> 9편이 수록되어 있다. 다시 읽어봐도 가장 좋은 것은 <학술원에의 보고>.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역시 <변신>. 초현실적인 재난이 일어났는데도 그 일의 원인이나 원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중요하지도 않게 다루어지는 것이 재미있는 지점이다.
14. 책 한 번 써봅시다(완독)
작법서라 흥미 반 회의 반이다가, 장강명이라서 읽어 봤다. 반틈의 회의는 본문에 서술된 것과 정확히 같은 이유다. 도식화한 스킬을 가르쳐주거나, 최고의 소설에 대한 지침을 안내하는 책이 아닐지 하는 의심. 하지만 그렇지 않고, 아주 기본적인 부분부터 책에 대한 통찰을 폭넓게 다루고 있어 흥미롭다. 독서 중심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야망이 재미있다.
내가 소설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여기서 제시하는 <인물 중심 소설>, <사건 중심 소설>, <배경 중심 소설>이라는 개념을 아주 지긋지긋하게도 우려먹고는 한다...이걸 토대로 생각해봤을 때 역시 화산귀환은 고도로 발달한 로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의 무협은 사건 중심 소설인 반면 그건 인물 중심 소설이니까...
15. 아프리카 안내서(박미준)(완독)
본인 아프리카 대륙 출신 친구 n명 있으면서 아프리카에 대해 너무 무지해서 읽어봤다... 문화권에 따라 북아프리카, 동아프리카, 서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 남아프리카로 나뉜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사막과 아랍 계열, 밀림과 습지, 화려한 도시, 초원 전부 아프리카의 이미지인데, 모호하게 뒤섞여 있던 이미지를 명료히 구획해 줘서 한층 개운해진 느낌.
아동용 교육 도서는 정말 멋진 정보 전달 매체예요.
16. 칵테일, 러브, 좀비(완독)
4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편으로서 매력적이었던 건 역시 <칵테일, 러브, 좀비>. 인물의 배치와 단편 특유의 극적인 전개, 좀비처럼 살다 좀비가 되어버렸다는 희극적인 면이 좋았다. 몽글몽글 아름다웠던 건 <습지의 사랑>, 가장 속도감 있게 읽은 건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네 편 전부 해서 한 시간 안에 다 읽을 볼륨.
작가의 전작이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다소 삼류 영화 같은 제목이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한다...!
17. 한강 디 에센셜 -읽는 중-
희랍어 시간, 회복하는 인간, 파란 돌, 시와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희랍어 시간 전철에서 읽다가 현기증 나서 덮고 모른체하기를 n회...폭격처럼 쏟아지는 아름다운 묘사가 과하게 괴로워서 피라도 토하고 싶었다. 힘들어...힘들어요.
번외: 읽다가 (내가)탈락한 것
1. 천 개의 파랑
분명 문체도 주제도 내가 좋아할 타입인데 이게 왜 이렇게 안 넘어가는지 모를 일
2.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학위 할 때 읽어보려 했는데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지 뭡니까? 빌리고 펴지도 않고 돌려주기를 반복하다 보니 읽지도 않은 책에 질려 버렸습니다.(...)
3. 빠칭코
한국 근대 배경 문학 특유의 '절망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서 탈락. 그리고 개인적인 호불호를 말하자면 나는 성적으로 불쾌한 장면을 읽고 나면 그뒤를 별로 안 읽고 싶어지는 습관이 있다. 필요한 요소인 것도 알고, 꽤 건조하게 묘사되기 때문에 창작윤리에 어긋난다고 생각지도 않지만 그냥...그냥 기분을 잡친다고...! 그것까지 문학의 역할인 건 맞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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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독서에 관한 썰...과거의 제가 적어 뒀는데 꽤 도발적이네요? (ㅋㅋㅋㅋ) 버리기 아까워서 여기에다 남겨 둡니다.
1. 비문학이 문학보다 어렵다?
왜인지 이런 인식이 있는 것 같은데, 내 기준 무조건 문학이 더 어렵다. 집필 방식부터 비문학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의도하고, 문학은 '평면적인 사건을 복잡하게 엮어'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좋은 비문학은 쉽게 읽혀야 하고, 반대로 좋은 문학은 어렵게 읽혀야 한다.
아마 비문학을 읽기 힘들다고 느꼈다면 높은 확률로 어려워서가 아니라 지루해서이고... 그게 아니면 책 안 읽던 사람이 '외워야 할' 정보량이 많은 개론 형식의 책, 그러니까 지대넓얕이나 저스티스 같은 거 읽으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2. 이성이 감성보다 우월하다...?
흔히들 문학을 경시하는 집단은 공감능력 경시 풍조도 함께 가지고 있는데, 이성적인 것이 감성적인 것보다 우월하며 배운 사람은 이성적으로 사고한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도둑맞은 집중력>에 의하면 공감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며 문학과 공부를 통해 학습하고 확장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성적으로좀생각하시죠,(안경척) 하는 사람들은 사실 책도 안 읽고 공부도 안 한 애들이라는 것. "공감이란 귀중한 자산"이다. 최소한 인본주의적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타인에 대한 이해를 배제할 수 없다.
3. 텍스트힙?
한강 작가님의 노벨상 수상이 불러온 독서 열풍. 장강명 작가님! 당신이 바라던 시대가 한 걸음 더 다가왔어요!! 독서가들은 항상 '독서가 비장해져서는 안 된다', '쓸모없는 영상매체만큼 쓸모없는 책도 많아져야 한다', '책은 겉멋으로라도 읽으면 좋다'를 주장해 오는데 왠지 텍스트힙을 아니꼬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아마 책은 재미없다는 이미지가 강해서, 같은 유난을 떨더라도 캐릭터나 음식 상품 팝업스토어에 비해 '좋아하는 척'으로 느껴지는 모양...? 하지만 그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리, 가 나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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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독후감 쓰려다 못 쓴...먼 과거에 읽었던 책들도 생각난 김에 목록만 적어 둔다. 여기까지 미뤘으면 안 쓰지 않을까?
아가미(구병모)
두 사람: 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 식사
채식주의자(대학생 초년 때...)
김영하 작품(검은 꽃, 살인자의 기억법, 오직 두 사람)
아킬레우스의 노래, 키르케
그리고 신년 기념 공주모임 멤버들과 독서모임을 하기로 했다는 사실. 여유가 되면 그것도 기록해두기로 한다.
첫 책은 <파과>가 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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