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ere I Stay/보물상자

230723

by 연일생 2023. 7. 23.


우연한 상황에서는 모든 감정이 배가 된다. 우연에 지나지 않는 시덥잖은 것들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의미를 붙이는 이유일 터이다. 그가 하나하나 써내려간 51개의 메모가 덧붙여진 나의 원고를 읽으며,  평소와 다름없는 그의 낱말들이 활자로 박제된 진귀한 유적을 연구하며,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며, 일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 부끄러운 피조물에 대한 수치를 감내하며, 두어 시간을 앉아 있던 차에 실재하는 그가 나타났을 때. 신기한 마음에 외려 무덤덤하게 일거리로 돌아가는 나에게 연신 반가움을 감추지 않았을 때. 말없이 먹을거리를 하나 놓아 주곤 먼 자리를 찾아 떠나갔을 때. 내게 무슨 힘이 있어 이 하잘것없는 우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있다는 걸까.

'Here I Stay > 보물상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년 쓰면 재미있을 것 같다  (0) 2023.10.06
건실한 생활  (0) 2023.09.23
정리충의 숙명  (0) 2023.07.08
<사이렌: 불의 섬> 욕망 그득한 후기  (0) 2023.06.11
그놈의 MBTI 이야기  (0) 2023.05.2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