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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I Stay/보물상자

201016 펜타포트 넬: 일반인(이었던것) 시점 주접

by 연일생 2020. 10. 17.


자리 박차고 뛰쳐나가서 방방 뛰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필사적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소리도 못 지르고 뛰지도 못하는 락페라니 이 무슨 촌극이란 말인가…. 물론 당연히 감지덕지다. 넬이야 항상 자주 들었지만 근래 들어서 유독 이유 모르게 푹 빠졌는데, 펜타포트 라인업을 뒤늦게 확인했을 때의 감격이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내 넬 입덕곡은 역시 <오분 뒤에 봐>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 20년 가까이 승승장구하는 밴드라 해도 19년째에 낸 노래로 입덕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놀랍게도. <꿈을 꾸는 꿈>, <기생충>, <The Ending>을 특히 좋아하고, 나머지는 그냥 신곡이나 유명한 타이틀곡 정도로 소소하게 그러나 꾸준히 듣고 있었다. 몇 년째 소소하게만 듣던 밴드에 갑자기 치이는 건 또 무슨 경우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공연 영상을 몇 개 돌려 보면서 문득 김종완이 멋있다는 생각을 해버렸고, 거기에 놀랐고, 그부터는 홀린 듯이 끌렸을 뿐. 난 어떤 밴드든 "보컬"이 멋있다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냥 전체가 멋있다고 생각하지.


락페는 자주 가 봤지만 생방송 영상에서 현장감이 느껴지는 것은 전무후무한 경험이었다. 조명이 꺼지고(켜지진 않았음), 무대 배경 영상이 흐르고, 안개가 (아티스트를 가리며) 피어오르는 순간순간이 머릿속에 딥러닝 된 락페의 강렬한 기억과 결부되어 오감 데이터를 불러오는 것에 성공했달지…아무튼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해가 져 버린 락페스티벌 공연장의 눅눅한 저녁 습기를 마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젖은 티셔츠를 입고 미끌미끌한 팔다리로 인파들 사이에서 까치발을 들던 기억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일이라 조금 씁쓸해지는 것은 찰나일 뿐이었다.


첫 두 곡까지는 너무 집중해서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기억도 좀 날아가고 기분이 영 붕 떠있는 걸 보면 언택트라지만 아무래도 내가 락페를 다녀오긴 한 모양. 뭔가 비정상적으로 흥분해 있었는지, 다시 들어보니 이렇게 고요한 노래인가 싶은 것마저 현장감 제대로다. 서너 번째 곡부터 서서히 긴장이 풀려서 채팅창을 힐끔거리다 그만 웃겨서 쓰러지고 마는데. (1)조명팀 퇴근했나요? (2)파마한 페이커인가요? (3)신비주의 컨셉인건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넬을 가수라고 소개하는 아나운서와 김종완 얼굴만 찍고 있는 카메라, 그러나 보이지 않는 김종완 얼굴, 퇴근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명팀. 총체적 난국. 그냥 청각에 집중하기로 했다.

넬 공연영상을 안 볼 때는 '넬은 네 명인데 키보드는 누가 치는 거지? 보컬?'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때그때 보컬도 치고 기타도 치고 베이스도 치는 듯. 넬은 특히 건반? 신디?의 비중이 꽤 커 보이는데 그래서 과감하게 베이스도 버릴 수 있나보다. 내가 못 듣고 있는 건가 했음. 베이스님이 say Ho~ 하시자 채팅창의 모든 사람이 호를 외쳤던 기억이 떠오른다. 와중에 군중을 가로지르는 메까지.
셋리스트에서 이십 년차 짬밥이 느껴져서 감탄스러웠다. 감성으로 시작해서 사이키델릭을 거쳐, 가슴이 웅장해지는 소년만화st를 지나 제대로 록키한 것으로 마무리. Ocean Of Light부터 뛰고 싶어서 근질근질해 죽는 줄 알았다. 어디서 뛰어야 할지 너무나도 극명한 곡. 그야말로 공연용 곡. 셋리스트는
그리고 남겨진 것들-Slow Motion-Newton's Apple-All This Fxxking Time-소멸탈출-Ocean Of Light-Grey Zone
이라는데 나는 거의 다 초면이다. (아 셋리스트 찾기 너무 편하다. 녹화강의 돌려 볼 때 느낀 비대면의 장점을 여기서 다시 느낀다.) 후반 곡들이 정말 다 취향. 이 중 하나만 일찌감치 들었더라도 입덕이 ktx로 이루어졌을 텐데. 묘하게 아까운 기분.

김종완님 멘트가 너무 귀여운데 이게 한창 이성을 잃을 시기인 입덕기의 빠깍지인지 팬분들도 다 귀여워하시는 건지 모르겠다. 어딜 보고 말해야~하니…? 꼼지락꼼지락.
잠깐 찾아본 바로는 쉽지 않은 분들인 것 같아서 마냥 귀여워하기엔 좀 불안하긴 한데 굳이 지금 타오르는 연심에 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고굽척하고 있다.


버스킹도 랜선 버스킹, 공연도 언택트 공연, 뭐 많이도 들어 봤지만 실제로 현장감 있게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영상 컨텐츠가 범람한 대 미디어 시대와 맞물려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내 보려는 모습이 찡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시대는 이런 식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을 요즘 시국에서 참 많이도 느끼게 된다. 댓글창이 굉장히 웃겼다. 다른 것보다도 저 "화장실 사람 개많음"이라는 말이ㅋㅋㅋㅋㅋ 내 귀에 이 목소리 누구 거지? ㅋㅋㅋㅋㅋㅋㅋ

…. 펜타포트…. 벼르고 별렀지만 오늘자는 넬밖에 못 봤다. 시험공부는 커녕 강의 듣고 실험 하는 것만으로 하루가 끝났던지라. 정말 후회 없는 40분이었고, 한껏 풍부해진 플레이리스트를 안고 돌아와 매우 기쁘다. 바다에서 조개나 조약돌 따위를 소중하게 모아 왔을 때 이런 기분이었던가.
되돌아보면 오타쿠였을 때의 삶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문득 새벽에 찾아온 깨달음. 나는…오타쿠일 때의 내가 가장 좋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뭐 음악이야 항상 듣고 있지만 덕질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고. 무슨 말이냐면 입덕 각을 재고 있다는 이야기. 이 시기에 뮤지션을 좋아한다는 것도 참 뒤늦은 일이고, 특히나 공연 위주로 돌아가는 밴드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해 보이지만, 내가 언제 그런 것 따져가며 덕질하고 앉았던가. 덕심과 여름 날씨는 믿는 게 아니랬다. 아무도 모른다. 내일이 되면 내가 그저 감상만 할지 점점 더 젖어들지 눈 깜짝할 사이에 풍덩 빠져버릴지. 그저 지금은 만족스럽고 새삼스러울 뿐이다. 잃어버린 2020년 락페계절의 끝에 펜타포트의 40분을 찍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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