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명석하지 못해서일지, 도전적이어서일지, 아니면 깊이 이해하고 싶은 욕망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항상 모든 것을 겪어보고야 깨닫고는 한다.
모든 것을 다 모으고 기록하는 맥시멀리스트였다가, 극도로 물건을 줄이는 미니멀리스트였다가, 지금은 딱 적절한 정도를 찾았다.
조용하고 말 없는 사람이었다가, 또 한없이 가볍게 웃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었다가, 또 적당한 간극을 찾았다.
남자와의 사랑을 삶의 근간으로 여기다가, 또 세상에서 가장 쓸모 없고 필요 없는 방해물로 여기다가, 지금은 미화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깨끗한 상태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을 너무너무 좋아하다가, 모든 사람을 싫어하다가, 좋은 면은 좋아하고 싫은 면은 싫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극도로 금욕적이었다가, 한없이 도파민을 즐기는 삶을 살다가 어른이 되었고,
정체성을 외부의 것으로 가득 채웠다가, 그 가운데 무엇에도 목을 매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은 소비를 무의미한 것으로 바라보던 사람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가능한 한 마음껏 누리려는 사람이 되고 있다.
값비싼 것을 누린다는 것 자체보다는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이 신기해서 좋다.
언젠가 이런 것들에서도 신선함을 느끼지 못하고, 그들 사이에 어떠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거나, 그들의 근간을 이루는 것을 파악하게 된다면 늘 그랬듯이 중도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2. 그래서 요즘 관심이 가는 것은 파인다이닝과 여행.
사실 외식 좀 줄이고 집밥 많이 해 먹으면 맛과 건강과 절약 모두 잡을 수 있는데 낡은 대학원생은 집에 들어오는 순간 잔다는 게 문제다….
하여간 빵떡이와 이러한 대화를 한 끝에
'집밥을 최대한 많이 해 먹고 절약한 돈으로 파인다이닝을 가자!' 하는 목표를 세웠다.




관심이 가는 것은 이 가게들. 애프터눈 티세트 너무 아름답다….

여행은 최근 인터넷에서 발리 여행기를 본 이후로 계속 아른거린다. 풀빌라에서 보내는 휴가…. 마사지 스파…. 나른한 햇살과 에메랄드 빛 해안…. 프라이빗 비치….
몽골도 별 많고 말 탈 수 있고 평야를 누빌 수 있어 좋아 보이는데
위생 면에서 고생을 좀 한다길래 제주도로 로망을 좀 축소해볼까 하는 생각도(?)
말도 탈 수 있고 별도 많잖아? ㅋㅋㅋㅋㅋㅋㅋ

아직 어리니까 배우는 것과 새로운 경험에는 돈을 안 아끼고 싶다. 서핑도 배워보고 싶고 윈드서핑도 해 보고 싶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버는 돈만큼 쓰는 돈도 늘어나겠지? 비싼 지출은 어떤 것일까. 집, 차, 주얼리, 시계, 옷, 지갑…? 지금이야 다 부질없어 보이지만 나이를 먹고 연봉이 오르면 품위유지비가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어 보이긴 한다. 내 눈만이 아니라 함께하는 지인들의 눈도 높아질 테니.
대표적으로 대학생 저학년 때는 보세만 입어도 아무런 불만이 없었던 반면, 현재는 에이블리를 세 시간 뒤져도 영 싸구려 같아 눈에 안 찬다. 무신사나 스파브랜드 정도의 가격대가 딱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것도 싸구려 같아 보이는 때가 올까…?!? 세 살 많은 선배도 가족이나 연인 생일 선물로 50만원 아래는 눈에 안 찬다고 하는데 벌써부터 내 씀씀이 커지는 게 두려워진다.
떠오르는 교수님의 어록이 있다. "월에 1억을 벌면 돈이 남아돌 것 같지? 천만에. 1억을 벌면 1억을 버는 사람들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고."
3. 꼭 새로운 경험이 아니더라도, 놀 시간이 잘 없고 돈을 대학생보다 쬐끔 더 벌다 보니 시간이 날 때마다 성대하게 노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파티 좋아. 먹부림 좋아. 여사친모임 너무 좋아.
바쁜 랩실 인간들을 모으려면 항상 내가 주최 노릇을 해야 한다. ㅋㅋㅋㅋㅋ 하지만 잘 한다. 좀 간사 체질인가 보다. 그리고 돈 관리 잘 하고, 남의 의견을 100% 수용하며,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집착도 없고, 일이 많거나 힘들다고도 전혀 생각하지 않아 최고의 주최다 ㅋㅋㅋㅋㅋㅋㅋ
4. 정체성이 한두 줄로 뚜렷이 서술되지 않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일이나 취미가 본인을 대변하고 과대표해서는 안 된다.
본인을 정의하려 노력하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나는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라는 말은 아무렇지 않으면서도, '나는 취미 부자야'라는 말이 뭔가 어색하게 들렸던 것과 같은 이유로.
5. 끔찍하게 싫어하던 사람도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은 기대의 빈도에 비해 너무 드문 일이기에 기묘하고 신기한 일이다...
그토록 싫어하던 면에 별 감정이 없어진 내가 그것을 무감히 털어놓았을 때 많이 어린 행동이었다고 인정하는 모습은 더더욱 낯설고 이상한 기분이 들게 한다.
울며 원망하고 소리쳐도 한 마디 들어주지 않던 그에게 더이상 기대하는 게 없어진 지금에야 그는 나를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이 큰 의미가 없는 지금이기에 나 역시 그를 이해할 수 있다.
6. 남자 연상 지인은 크게 <아빠/형/오빠/동급>의 4가지 분류로 카테고라이징할 수 있다….
빵떡이와 차차는 동급이고, 정 선배는 오빠고, 박 박사님은 아빠고 나머지는 대부분 형이다.
사이 안 좋았던 형이 최근 들어 오빠처럼 굴어서 킹받는다.
7. 정 선배 얘기가 나온 김에 미남 이야기를….
그는 얼굴이 잘생긴 것도 있지만, 잘생긴 사람 특유의 지잘생긴거 아는 attitude와
그에 기인한 gentle & sweet moment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어 킹받으면서 좀 더 잘생겨 보인다. (…)
얼굴이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은 인성이나 사회성,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지의 여부와 무관하게 대체로 그 특유의 attitude가 보이게 마련인데
간혹 그런 게 없는 미남 미녀들을 보면 매우 신기하다. 사수 언니와 모 선배가 대표적으로 그렇다.
반대로 그것이 충만한 사람은 민씨의 소개팅남(...)
8. 민이와 이야기하다 그의 이상형은 얼굴 예쁜 하남자인가? 라는 결론에 이르렀는데
생각해보면 난 그냥 하남자를 좋아하는?게? 아닐까? 웹툰을 봐도 항상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남캐는 하남자였다….
나의 이상형은
(1) 무슨 생각하는지 알기 쉽고
(2) 약간 띨빵하고
(3) 찐미 조금 있어야 한다
…라고 말했더니 애인에 맞춰진 취향이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1)은 안 친해서 잘 모르겠다였는데
안 친해도 (2)랑 (3)은 안다는 게 너무 웃김
9. 미래를 상상하는 건 항상 즐겁고 설레는 일이다. 나는 지금의 학위과정이 끝났을 때도, 서른이 넘었을 때도 기대되어 그것을 상상하는 데에 많은 휴식시간을 사용하고는 한다. 변화가 없는 삶은 죽은 삶이다. 그리고 최소한 서른 중반까지 내 삶에는 변화가 보장되어 있다. 그게 지금으로선 너무 기쁘고 행복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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