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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I Stay/개똥철학

211101

by 연일생 2021. 11. 1.

 

1.

아침밥을 너무 많이 먹는 건 곤란하다. 저녁을 거지처럼 아침을 황제처럼 먹으라는 말은 아침이랑 점심 사이에 운동 혹은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머리를 많이 쓰면 머리에 피가 몰려서 소화에 쓸 혈류량이 모자란 걸까 따위의 생각을 하다가, 역시 사찰에 들어가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인생일까 하는 거창한 생각으로 비약해 버린다. 아침에 과욕을 부렸으면 점심 때까지 일을 하고, 아침을 적당히 먹었으면 글을 외고. 내 몸의 상태에 맞춰서 일과를 정하는 게 동물로서 순리에 맞는 일 아닌가? 혈류량을 적재적소에 배분한다는 말과도 같다. 세상이라는 운영체제를 잘 운용할 수 있는 매뉴얼은 불교 유교 어쩌구인데 유저들이 말을 안 들어서 그렇지 개발자는 잘못이 없다던가 하는 농담이 생각난다. 하지만 실제로 해 보면 또 그것만의 고충이 있겠지, 시주 문제 하며 밭에 병충해 오면 또 걱정일 테고. 시주를 해 주는 사람 없이 모두가 불교 신자가 되면 어떻게 먹고 사나. <이성적 낙관주의자>의 중심 내용이 내겐 제법 설득력 있게 보였으므로ㅋㅋ

 

 

2.

동기가 확실한 인물보다는 이율배반적 감정을 가진 인물이 좋고 그걸 그럴듯한 무의식적 행동으로 나타내는 작품이 좋다.

물론 대사와 독백이 긴 작품은 촌스럽지만 그것만의 맛이 있다. 셰익스피어는 지금 읽어도 가슴이 뛸 수밖에 없으니까. 동시에 언제까지나 추억과 향수만 파먹고 살 수는 없는 일이고ㅋ 나는 현실이건 작품이건 말이 되는 말로 구구절절 설명하는 행위가 그다지 진실된 마음으로 와닿지 않는다. 작가의 변명을 캐릭터의 독백을 빌려 주구장창 늘어놓는 것만큼 재미없는 작품도 없고.

<이방인>은 무의식적 행동과 긴 대사를 정말 절묘하게 배치한 점에서 멋지다고 생각한다. 나는 1인칭 시점의 소설이 주인공에게 비판적인 것을 매우 좋아한다. 예를 들어 롤리타 같은 것.

 

나는 아무래도 절망적이고 이 세상이 썩었고 인간은 이기적이고 어쩌구 하는 염세적인 작품보다는 무언가 달라지는 게 있는 작품을 좋아한다. 중학생 때 내게 가장 소중했던 세계명작은 <비밀의 정원>이었고, 고등학생 때 제일 좋아했던 건 <죄와 벌>이었다. 위에 언급한 <이방인>은 전자에 가깝긴 하지만, 문체가 담백하기도 하고, 작가의 조심스럽고 진중한 접근이 엿보이므로 제외.

일상적인 것을 얄팍한 것이라 생각하고 평범한 것을 가치 없는 것이라 생각하는 인간은 쉽게 절망하고 무너질 것이다ㅋ 그런 취향을 자랑스러이 여기는 인간은 더더욱. <키다리 아저씨>가 시시하고 뻔해서 별로라는 평에 발끈해서 쓰는 말 맞다. 그러는 나도 뜨개질이나 라탄 공예, 패브릭 DIY 부류의 취미를 다소 시시하다고 여기는 걸 봐서 비슷한 인간이다. 지식인들의 가치 판단과 지적 허영심은 얼마나 편협하고 부질없는지…….

아름다움을 느끼는 역치가 낮다는 건 축복이다. 동시에 아름다움을 좋아하고 추함을 견디지 못하는 건 유약함이다. 수준 높은 예술가와 기준이 좁은 지식인은 그래서 유약하다.

 

 

아이유 이 노래 이 부분...

나왔을 때부터 얼마 전까지 '우린 이른 아침 (???)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라고 듣고 있었다.

식당 등에서 나올 때마다 '대체 뭐가 아름답다는 거야'했는데 내 해석이 더 마음에 든다.

 

소소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은 내면의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나도 몰랐던 내 행동의 원인을 간접적으로 깨닫게 해 준다. 그래서 소중한 거다.

 

 

3.

무지성 긍정맨과 일하는 것은 두렵다……. 그런 인간과 협업해서 결과가 좋게 나온 적이 없다. 통계적으로 부정적인 사람이 승진이 빠르다는 내용의 영어 지문이 떠오른다.

어떤 상황에서든 긍정적인 사람은 정말 좋다. 분위기도 좋고 결과물도 잘 나온다. 중요한 건 '무지성'에 있다. 무지성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할 만큼 '긍정' 자체에 방점을 두는 인간이 어쩌다 한둘 있다. 그러니 일이 목적일 수가 없고 따라서 일을 잘 할 리도 없다. 그런 사람은 그냥 긍정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의 멘탈 회복기를 응원하지만 나랑 일은 안 했으면 좋겠다.

동료는 능력과 양심과 싸가지 중에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능력 노양심 유싸가지가 앞서 말한 무지성 긍정맨에 가깝고(하는 일 없이 살갑게 굴기만 하면서 성과는 자기가 낸 듯 뿌듯해 함), 무능력 무싸가지 유양심은 트롤질하지만 자신이 트롤짓한다는 자각은 있어서 '내가 참여 안 하는데 뭐 어쩌라고' 하는 타입이다. 그럼 셋 다 없는 사람의 예시는 뭔가요? 살갑게 굴지도 못하고 일도 못 하고 트롤질은 있는대로 해 놓고 합당한 항의를 받으면 자신의 무능함과 싸가지의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해 진심으로 억울해하는 타입입니다…….

 

첫 번째 일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수를 잘 만나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수를 둘 정도 거쳤지만 진짜 첫 번째 사수는 이번의 김 언니라고 생각한다. 부사수는 일 외적인 것도 사수를 따라가게 되어 있다. 그리고 김 언니는 배울 게 많은 사람이라, 잘 만났다고 생각한다. 신세를 질 용기를 가르쳐주면서도 반드시 갚아야 하는 부분에 대한 구분이 엄격하다. 다함께 하는 일에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선뜻 나서는 것에는 물건을 집어드는 정도의 용기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줬고, 할 말을 다 하면서도 미움 받지 않는 법을 안다. 불편한 상황에 어떻게 들어가고 빠져나오는지 안다.

 

무결성을 검사하려는 습관은 잔혹하다. 불편러 어쩌구 하려는 소리는 아니고(ㅅㅂ) 욕 먹을까 노심초사하는 사람은 불편하고 피곤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보통 노양심 노싸가지로 진화한다. 사람은 신이 아니고, 자신이 한 말을 완벽하게 지키는 사람은 없고, 힘든 상황에 처하면 보일 수 있는 반응은 거기서 거기다. 실수를 하고, 부도덕적인 짓을 하고, 본인도 모르게 동료를 헐뜯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사실관계나 사고방식이 이상하게 왜곡된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사람이나 나쁜 짓을 해버린 사람이 되는 걸 감수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이상하고 예민하고 피곤한 변명쟁이보다는 차라리 그 쪽에 사람이 많이 모인다.

 

 

4. 최근 스트레스 받는 것들

4-0. 영어: 회화는 그렇다 쳐도 리스닝이 너무 심각함. 토스 학원 다닐까 진지하게 고민 중.

4-0. 잠: 이놈의 수면패턴……. 요즘 생활패턴은 일반적으로 11시 출근 0시 퇴근 3시 취침이다. 내가 이렇게 자제력이 없는 인간이었나 자괴감 들고 괴롭다. 진심 22시에 뻗어야 흥청망청 안 놀고 잘 수 있다.

하지만 퇴근을 늦게 하면 늦게 할수록 보상심리가 작용해 새벽을 불태우게 된다……. 퇴근은 이래서 늦게 할수록 해롭다. 밤에 잠을 못 자니 낮 동안 빌빌거리고, 그러면 또 퇴근 시간 늦어지고, 밤이 되면 뭔가 추가근무하는 기분에 (팩트: 늦게 출근해서 정상시간임) 조금쯤 여유로워져도 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그럼 또 업무효율 날아가고 악순환이다.

우리 학교 에타……. 8시간 이상 자면 아름다운 세상에서 일할 수 있는데 그게 왜 그렇게 힘든 거야. 흑흑.

4-1. 논문st 연구란 무엇인가: 무지성 데이터 수집에 회의를 느끼다 박사학위발표를 보고 어느 정도 길을 찾았다. 다음 실험은 꼭 내가 설계를 짜 가서 컨펌 받아 진행해야지.

4-2. 이 실험만 하는 게 맞는 건가, 다른 사람이랑 협업해야 하지 않나: 이건 좀 생각해 볼 문제. 대학원 동기들과 정기적으로 정보 교류 같은 건 하고 있지만, 일을 혼자 하는 건 정말 심각한 일이다.

 

나는 나름 대인관계 잘 관리해 왔고 생활패턴이나 시간 관리에도 자신이 있었는데, 반 년만에 만나는 친구와 약속 하나를 못 잡아서 현타가 온다. 서로 바쁜 탓이라 어쩔 수 없는 것 맞지만, 직장생활을 하면 앞으로도 평생 이럴 텐데.

하지만 직장에선 밤 열한 시부터 익일 두 시까지 기습 렉처를 열지도 않고 누구도 시키지 않은 공부를 하느라 밤을 샐 일도 없으리라는 사실에 위안을 가진다……아마도.

 

 

5.

추억의 웹툰 <코알랄라!>를 정주행했는데 내가 정말 좋아했던 점이 마구 떠오른다. 조목조목 나열해주는 게 좋았고 지식을 설명해주는 게 좋았고 각자가 가진 흔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게 좋았다.

남의 추억은 구구절절해선 재미가 없다. 코알랄라는 항상 그 비중을 절묘하게 끊어서 좋다.

오이 편을 봤더니 오이가 그렇게 먹고 싶다. 오이소박이, 오이무침, 오이냉국수, 오이냉국, 비빔면+오이채+달걀.

 

 

6.

쓸데없는 소리지만 이과 인싸는 그냥……그나물에 그밥인 내향인들 사이에서 그나마 인싸로 쳐 주는 거라는 편견이 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특별한 구실 없이 말을 걸어서 대화 이어나갈 수 있는 정도면 인싸 취급 당하는 듯. 개중에 간혹 댄동st 술자리 핵인싸가 있긴 하지만 내향인들 사이를 버티지 못하고 끼리끼리 놀러 나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협소한 식견에 기반한 고찰이다.

 

코로나가 끝나면 락페 가서 슬램존에서 모르는 사람들이랑 격정적으로 서로에게 어깨빵을 날리고 싶다.

슬램존에서 부대끼다가 밥 먹는 동안 초면인 사람 가방 맡아 주던 언젠가의 이상한 기억이 묘하게 그립다. 나의 뭘 믿고 본인의 가방을 맡기셨는지는 나도 모른다.

지스타가 열린다는데 가도 될지 고민이다. 2차 접종 완료한지 한참이 지났지만, 역시 자유의지로 움직이지 못하는 좁은 공간에서 사람의 파도에 떠밀려가는 짓은 너무 위험하지 않나 싶은 것이다.

 

 

7.

킬빌 여고생 야쿠자가 단검에 주렁주렁 달고 다니던 핑크비즈 열쇠고리 같은 게 가지고 싶다. 비즈와 리본으로 점철되어 묘하게 촌스러운 일본 팬시나 적당히 오타쿠스러운 일본 원피스에 관심이 간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뉴트로?

 

앙스타 반지를 해배비 포함 7~8만원에 공구하느니 금반지를 사는 게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지 않을까 고민을 하다, 문득 비슷한 원가로 팔렸을 서약반지가 지금도 22~30만원에 중고거래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굿테크(a.k.a. 되팔렘)를 할까 잠시 갈등했다. 하지만 서약반지가 특이했던 거지 이번 반지가 그만큼 오를 것 같지는 않고, 플미 붙여 팔 생각으로 사는 게 좀 양심 없어 보이기도 해서 보류. (굳이 따지자면 예약판매니까 되팔렘은 아님. 내가 누군가의 몫을 뺏는 게 아니라 내 몫만큼 더 생산되는 거.) 2만원만 더 저렴했어도 '안 팔리면 내가 가져야지' 마인드로 살 수 있었을 텐데.

큰일이다 남자친구가 내 오타쿠게임 이름을 안다……. 상기한 내용을 말해 주자 "그 앙상블ㅅ타즈?가 그렇게 잘나가는 게임이었어?"라고 한다. (…) 그래서 함께 일본 기준 매출을 살펴보다 경악했다. 월 단위로 40~140억 원이 나오고 있잖아……. 그런데도 모바일 게임 매출 10위에도 안 든다. 일본에서도 린저씨 같은 사람들이 두당 월 몇천 만원씩 질러주는 걸까.

 

 

8.

상가촌과 아파트촌이 섞여 있는 옆 동네가 무척 마음에 든다.

대로변 사거리를 끼고 있는 동네답게 학원과 병원과 피트니스짐이 엄청 많고(a.k.a. 시험의 탑과 생명의 탑), 아파트 단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채가게와 정육점과 세탁소, 은행도 있는데, 또 대학가처럼 프랜차이즈도 많다. 노브랜드버거랑 아마스빈이랑 KFC 같은 거. 어린이가 많고 애기들이 노란색 셔틀 버스에 하나둘 올라타는 걸 볼 수 있다. 귀엽다.

사람 아기는 무척 작고 귀엽다……. 머리가죽이 얇아서 두개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작아서 한 손에 다 들어온다. 그리고 갓 자고 일어난 고양이처럼 따끈따끈하다.

 

9.

방학은 아무래도 숙제가 있어야 더 즐거운 법이다. 초등학생 시절 방학숙제를 하는 타입은 크게 두 종류로, 방학 초에 끝내는 사람과 방학 끝에 끝내는 사람이 있었는데, 공통적으로 일주일 안에 몰아서 해치운다는 점은 같았다. 남은 방학 기간을 더 즐겁게 하는 근원이 성취감이냐 배덕감이냐의 차이일 뿐. 연일생은 성취감파.

 

10.

당위성 없이 싫어하게 되는 사람이 세상에는 있지만

그런 사람이 쉽게 나쁜 말을 듣는 건 더 싫다.

싫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싶고 뒷말에 대신 화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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