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 밖의 세계

✨CES LasVegas 2023 (1): 출발~2일차

by 연일생 2023. 1. 16.

지도교수님의 간택을 받아 난데없이 타국의 박람회에 참가하게 된 방년 26세(6개월 뒤 24세)의 연일생. 처음 제안을 들었을 때는 사실 기쁨보다는 당혹스러움이 컸다. 자세한 내용을 들어보자 학회도 아니고, 내가 발표를 하는 것도 아니고, 전공이랑 관련이 있는 분야도 아니어서 더욱 당혹스러웠으나…항공과 숙박, 교통이(심지어 나중에 알게 된 사실로는, 식비마저) 무료인데다 주최가 우리 쪽이 아니라서 업혀 가기만 한다는 점에 큰 매력을 느끼고 운명을 받아들인다. 생각보다 일정이 너무 길어 연구기간이 꽤 빈다는 사실이 못내 찜찜함을 남겼지만, 생각을 그만두고 즐기기로 노선을 틀었다.

CES. 연일생은 몰랐지만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은 전부 안다는 대규모 전자기기 박람회. 이왕 가는 것 출국 전에 무슨 부스 볼지 조사를 해 놓기로 다짐했으나, 누구에게 말하지 않은 다짐은 하루 전까지 지속되는 야근에 공중분해되어버렸다. 한 달 전쯤부터 사전모임도 두어 번 거쳤으나 연일생에게 최소한의 의무감 이외의 것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팀원 모두들 여행의 설렘에 들뜰 뿐 박람회나 수상 자체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지는 않은 점이 오히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교수님과 연일생, 빵떡이를 포함한 연구실 동료 두 명, 타과의 학부생 하나가 팀이 되어 얼렁뚱땅 출국일은 다가오고 말았다.

 


○출발~비행기

 

4일 새벽부터 10일 저녁까지의 스케줄. 현지에서는 5박 6일이라 짧은 일정은 아니다. 따라서 빵떡이에게 캐리어를 하나 빌렸다. 본디 연일생은 3년전 5박6일 강원도 스키장을 갔을 때에도 배낭 하나와 에코백 하나로 모든 짐을 커버한 사람이지만…여차하면 가까운 편의점 걸어가면 되고 최악의 경우에도 집은 올 수 있는 한국에서나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받고 보니 캐리어가 무료로 부칠 수 있는 최대의 크기라 (3변합 153cm) 캐리어에 맞춰 짐이 늘어났다. 당연하게도 그래도 한참 남았다.



학교 측에서는 55명과 외국 나가는 게 부담이 큰 건지 통제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는데, 단체복 지급이 그 일환이었다. 모두가 싫어하는 눈치였지만 사업단 소속 젊은 인솔자 선생님의 극구 만류로 다행히 로고 각인만은 뺄 수 있었다는 점이 위안이 되어주었다.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회색 기모 후드집업을 받아들고, 니건지 내건지 헷갈릴 것 같아서 급한 대로 소매에 대충 자수를 놓았다. 자수라기에도 송구한 수준이지만……. 멀리서 보면 나름? 예쁘다. 원래 세로로 촘촘히 채우듯 놓으려 했는데 도안 없이는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생일선물로 받은 힙색을 두르고, 아끼는 인형을 달고, 사업단 뱃지도 달자 마치 어떻게든 교복을 튜닝하는 중학생의 기분이 되었다.

호화로운 버스와 도시락.


첫날인 4일은 오전 5시에 집결. 평소 늦잠을 자주 자는 빵떡이는 일어날 자신이 없다며 밤을 샜고, 나는 짐을 싼다고 두 시까지 우왕좌왕하다 빵떡이 옆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그렇게 네 시 삼십 분, 어두컴컴한 새벽에 둘이서 몸만한 캐리어를 질질 끌며 걸음을 서두르고 있자니 꼭 둘이서 야반도주하는 모양새였다. 말을 꺼내기 무섭게 빵떡이도 "내가 그 말 하려 했어!"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출발 전 건물 안에 모여 간단한 주의사항과 유인물 등을 하달받은 후, 6시부터 13시까지 관광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달렸다. 버스와 도시락이 -학교에서 준비해주는 것치고- 꽤나 신경을 쓴 티가 나서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운영 측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때 우리는 주로 여행에 대한 기대라고는 없이 줄곧 잠만 잤다... 이것은 전적으로 휴가 없이 과로하던 대학원생들의 탓이다.
기절잠 자다 일어나 둘러보는 면세점에선 정말 살 게 없었다. 나는 자꾸 일본의 면세점을 떠올리고 뭔가 특별한 먹을 게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는데, 역시 보통은 그냥 명품 싸게 파는 곳에 불과하겠지. 어머니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돌아다녔지만 나트라슬립 한 통 외에는 건질 게 없었다.



그러던 도중 발견한 빛, 라이엇 홍보 부스. 빵떡이와 나는 만장일치로 남은 시간을 그곳에서 때웠다. 부스 안을 돌아다니며 스탬프를 찍어 완성하는 미션, 게임 두 개를 플레이하는 미션이 있었고, 티켓을 전부 채우면 사은품을 증정해주는 식이었다. 롤을 해본 적 있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한 빵떡이에게는 5분내로 CS 많이 먹기 게임을, 없다고 답한 내게는 튜토리얼을 시켜 주더군... 나는 캐릭터나 스킬에 대한 이해가 전무해서 그냥 스킬 차는 족족 qwer만 누르고 있었는데 직원분이 해 본 적 있는 사람처럼 잘 한다는 립서비스를 해 주셨다. 스탬프 미션은 작은 공간 안에 나름 다양한 걸 채워 넣으려 노력한 게 보였다. 라이엇이 모바일 게임 사업도 했어?

펭귄 절망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때 생일선물로 받았던 힙색을 처음 착용했는데, 그 편리성에 반해 이후의 여행에는 필수적으로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덤으로, 힙색에 인형 키링을 매 여행마다 바꿔 가며 달고 다니는 나만의 소소한 행복도 찾을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을 함께할 친구는 키위새. 이 키링 지금은 잃어버렸는데(ㅠㅠ) 양면이 키위여서 참 좋아했다... 안녕... 잘 가...
 

 
이것저것 연발한 기내 사진. 비행기라고는 제주도랑 일본 갈 때 타 본 게 전부였던 연일생의 신기함이 드러난다. 창문 밝기도 조절되고, 담요도 주고, 일회용 이어폰도(쓰레기였지만) 빌려 주고, 좌석 앞에 모니터도 있잖아~?! 난생 처음 들어보는 신설 항공사인 데다 (밀덕인 빵떡이의 조사에 의하면)모델이 굉장히 낡은 것이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비록 좌석은 굉장히 좁은 편이었지만 나한텐 잘 맞았던 것 같다. 의자가 조금 앞으로 기울어져 있어 오래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프지 않았다. 대신 다리가 아팠다... 허벅지로 지탱하도록 설계된 걸까?
비행기에서는 모든 간식과 음료, 심지어 양주도 무료로 무한리필이 정석이라는데 저가항공이라 그렇진 않았다. 과자 한 팩에 5000원을 받고 팔았다... 항공기 가격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나머지가 쾌적했으니 됐다.
 


비행기 시간은 13시간. 첫 장기비행으로 13시간이라니 연일생은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여차하면 양주 먹고 정신을 off할 각오까지 했다. 보통 비행기를 탈 즈음이 여행의 설렘이 가장 극에 달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때조차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다만 졸리다고만 생각한 걸 보면 내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알 만하고...
옆자리의 다른 조원 남자분과 간단한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다가, 정신을 잃고 자다가, 기내식을 먹고 또 잤다. 자리 앞에 붙은 태블릿을 실컷 만져보다 책을 읽다 자기를 반복하다, 마침내 <H마트에서 울다>를 전부 읽고 나자 상당한 상실감에 빠졌다. 책 한 권을 완독하고도 고문의자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슬슬 괴로워질 때쯤 기내식의 소식을 듣고 기쁨에 차 <반려공구>를 읽어치웠다. 나름 쏠쏠했던 오랜만의 독서 시간;;; 활자도 눈에 안 들어올 시점이 되어서는 그냥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대각선 앞 사람의 스크린에 자꾸 눈길이 가서 <헌트>와 <마녀2>를 전부 스포당하고 말았다. 영어로 자막도 나와서 알차게도 구경했다. 그럴 거면 내 거 틀어서 제대로 보는 게 낫지 않냐 싶겠지만 이것만의 매력이 있었다고 피력하고 싶다... 의외로 제일 재미있는 것: 남의 영화 중간부터 훔쳐보기
차후 어머니가 헌트를 봤냐고 묻기에 '안 봤는데, 대충 다 봤어'라고 대답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기내식은 뭐 원래 그렇듯 영혼(아마도 간(NaCl))이 빠져나간 맛이었다. 하지만 따뜻한 블랙커피를 주는 게 무척 마음에 들었고, 설탕을 넣어 마시니 기분이 MAX로 좋았다. 기내식부터 시작해서 미국 전반에서 산미 없는 블랙커피를 물처럼 흔하게 제공해 주더군…정확히 내 취향에 맞는 커피라 내내 행복했다! 원래 밥 먹고 커피 마시는 습관 없는데 여기선 맛있어서 계속 마셨다. 설탕 한 스틱 말아 먹으면 얼마나 행복하게요
조금 사설로, 기내식과 커피를 주고받으며 승무원 분께서 한 명 한 명에게 코멘트를 해 주시는데, 정말 극한직업이구나 싶은 생각이... 시종일관 배려와 상냥함이 넘치는 목소리,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과친절에서 그분들이 얼마나 진상 손님과 윗선의 예의;교육에 시달렸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13시간 비행의 평을 내려보자면…여행보다는 일종의 정신수련 같았다. 견딜 만은 한데 견딜 만하기만 했다. 상기한 바와 같이, 허리는 안 아픈데 허벅지가 아팠다. 제대로 앉아 있었다는 의미겠지?
 


○미국 1일차
 

 
공항에 도착하자 여행사 사람들이 거대한 관광버스를 이끌고 우리를 픽업하러 왔다. 우리의 여행은 6일간 이 버스와 함께 했다.
연구실 단위로 움직였다 하면 섭외부터 서류처리까지 신경 쓸 게 천지라 누가 날 인솔해주고 주관해 주는 패키지 투어에 한껏 수동적으로 실려 가는 것이 너무나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함과 역설적인 자유를 만끽하게 했다…….
가이드님의 안내톤이 매우 안정적이고 듣기 좋았다. 실제로 여행 내내 졸린 머리로도 흥미진진한 설명을 원없이 들어 너무너무 좋았다! 미쳐버린 스토리텔링과 완벽한 문장 구성, 라디오 같은 부드럽고도 단호한 말투와 기복 없는 안정적인 톤. 정확한 딜리버리와 명료한 내용. 역사와 시사를 줄줄 꿰고 있는 박식함과 적재적소에 내용을 배치하는 훌륭한 재치. 이것이 투어 가이드의 이상(以向)?
 

이 축축한 사진들을 보세요.


그리고 무슨 대학에 캠퍼스 투어를 왔는데 기절할 정도로 관심 없고 집에나 보내줬으면 했다……….
하…아침 5시에 출발해서 4시간 버스 13시간 비행 후 12시간 관광은 누가 짠 스케줄일까….
아직 시차에 적응 중인 몸을 이끌고 하늘에 구멍난 듯이 퍼붓는 빗줄기 속에서 안쪽까지 물이 배어나오는 젖은 후드를 입고 푹 절은 신발을 쭤버쭤버거리며 추위에 덜덜 떨면서 관심도 없는 캠퍼스를 강제로 두 시간 걸어다니고 있자니 내가 무슨 죄를 지어 이런 형벌을 받아야 하는지 마흔두 번 고민하고 하늘에 사죄하게 되었다.
심지어 보통 LA에선 비 이만큼 안 온다면서요? 나 이 정도로 비 퍼붓는 건 한여름 장마철인 서울에서나 겪었었는데 여기가 소우지라니 이것은 과연 신의 장난인가 악마의 수작인가?
물이 없는 곳에서 이 정도 수준의 수둔이라니
시발


그런 것치고 웃긴 사진을 좀 찍긴 했는데…일행들 갑분싸 만들 수 없어서 노력한 흔적이다….
실제로 반쯤은 말없이 바닥만 보는 게 한계긴 했지만(;;) 나머지 반은 바닥난 인내심을 쥐어짜 사회성을 발휘함
꽤 긴 시간을 여기서 보냈지만 별로 길게 말하고 싶지 않으므로 사진만 좀 늘어놓고 끝내겠음….
 
그나마 날 가장 설레게 했던 것, 캠퍼스 내 북스토어 쇼핑. 역시 외국에 와 봤으면 마트와 편의점, 매점 같은 걸 털어야 한다. 맛있어 보이는 쿠키와 시리얼을 한 개씩 샀는데, 결과부터 말하자면 여행 끝날 때까지 먹지 않았다. 6일 내내 간식이라고 먹은 건 오로지 팝타르트 한 입뿐이다…. 왜냐면 이 사람들 날 너무 부지런히 먹였고…. 미국 간식 하나같이 너무 달거나 짜게 생긴 것뿐이라 더 그랬다. 사실 미국 디저트에 약간의 환상이 있었는데 막상 마주하니 보기만 해도 혈관 막혀서 손도 안 댔다.

 
점심은 인앤아웃 버거의 더블 세트. 가이드님은 유명세에 비해 그냥 일반적인 버거니까 큰 기대 하지 말라셨으나 비에 젖은 채로 시달린 탓인지 주린 배에 꽤나 달게 들어갔다. 특히 감자튀김. 나는 감자튀김이 "신선"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버거는 쉐이크쉑 버거의 20% 상위 호환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1.2쉑쉑. 이 때도 푹 절은 옷은 어쩔 수 없어서 추위에 달달거리면서 먹었는데 그래도 배에 뭐가 차니까 그나마 따뜻해졌다. 역시 몸에 혈당이 돌아야 안정을 찾는 연일생...
가이드님께서 한참 도로만 달려야 하니까 안 급해도 꼭 화장실 다녀오라시는 말을 남겼다(리터럴 in and out)

다시 탑승하자 하나둘 사람들이 기절했고 나도 의식이 꺼지는 걸 느꼈다. 잠인지 기절인지 구분되지 않는 것을 지내고 나자 가이드님께서 "그 사이 풍경을 못 봤다고 아쉬워 마세요, 어차피 지금 보이는 사막만 몇 시간이었어요"라는 따스한 위로의 말까지 건네 주셨다. 한참이라더니 과연 차만 타다 그대로 저녁시간이 되었다. 점심 먹고 이동 후 저녁 먹기라니 이게 무슨 개백수새키같은 일정 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이 때 연일생은 모르고 있었다 이 일정은 여행 내내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저녁은 한식당에서 고기를 먹었는데 속이 안 받아서 얼마 안 먹고 젓가락을 놓았다. 점심 먹고 자기만 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지? 우리의 만신창이 컨디션도 한몫을 해, 빵떡이도 마찬가지로 거의 먹지 못했다. 하지만 같은 테이블의 다른 팀들과 이야기하는 건 꽤 좋은 시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외모와 성격을 가진 동갑 여자분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너무…좋았음…오랫동안 당신 같은 친구를 기다려왔다우…. 돌아가서 연락하자고 할 만큼의 친분을 쌓는 데는 실패했으나 그 때 행복했으니 난 됐어….
 

지나쳐왔던 야경. 역시 관광도시의 밤은 화려하고 예쁘다.

 

 
오늘 일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CES 배지 수령이었는데, 요행히도 우리 호텔에 간이 수령 부스가 세워져 별도의 이동 없이 편하게 받을 수 있었다. 춥고 젖은 몸이 고달파 마음속으로 욕지거리를 늘어놓으며 방에 도착하자 갑자기...힐이 상당수 들어왔다. 집순이는 역시 집에 넣어 놔야 온순해진다. 룸메도 너무 좋은 룸메가 걸려서🥺 운명인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성격을 가진 한 살 동생 대학원생이라 여행 내내 행복하고 쾌적했다.
 
방과 침대가 굉장히 넓었다! 듣기로는 엄청 고급 호텔인 건 아닌 것 같은데 역시 땅덩어리가 넓으니까 뭐든 큼직큼직하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 가이드님 말로 카지노 호텔은 손님들이 내려와서 도박하도록 유도해야 하니까 방이 그리 편하지 않게 되어 있다고 했으나, 나는 별 불편함 없이 1000% 만족했다. 어매니티 빼고는?
 

 
놀라운 점: 어매니티에 바디워시랑 치약칫솔이 없었다
치약칫솔은 그렇다 치는데 호텔에…바디워시가 없을 수 있나? 런더리 서비스나 다리미, 모닝콜 등 기본적인 "호텔"의 서비스가 잘 갖춰진 호텔이라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심지어 카운터에 바디워시 없냐고 전화하니까 바디워시가 뭐냐더군…. 얘네는 비누로 샤워하니??? 어쩔 수 없이 호텔 내부의 편의점에 가서 샴푸 앤 바디워시 올인원을 샀다.
거긴 body wash라 적혀 있었으니 용어를 잘못 쓴 건 아닌 것 같은데, 발음이 안 좋았던 건가... 그 많은 샴푸 컨디셔너 쉐이빙 폼 제품들 사이에서 바디워시가 단 한 개 그것도 올인원 제품뿐이었던 걸 생각하면 역시 잘 안 쓰는 건가...

가는 공중화장실마다 변기 뚜껑이 없는 것도 그렇고 지금은 거의 인터넷 밈처럼 쓰이는 <신발 신은 채 침대 올라감 습성>도 그렇고 위생이 그리 철저한 나라가 아닌가? ㅋㅋㅋㅠㅠㅠㅠㅠ
근데 또 공중화장실에 세면대나 핸드워시는 자동이 많음 하나만 하라고
 

 
그리고 6일 내내 머리가 미친 듯이 뻣뻣해지는 걸 견뎌야 했다…. 사진은 머리 빗다 이 8개 빠진 빗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집에서도 린스나 에센스 먹여야 하는 머리긴 했지만 여긴 특히 더 그랬다. 샴푸 문제인지 물 문제인지 그냥 건조해서 그런 건지는 미제로 남아 있다.
좋은 점은 샤워 부스를 나오고 대강 닦기만 하면 금세 다 마른다는 점. 반대로 생각하면 이렇게 기후 자체가 건조하지 않은 이상 건식 화장실 구조를 갖추기는 좀 힘들 것 같다. 미국 생활 좀 했던 빵떡이가 왜 습기와 좁게 배열된 언덕, 산 등을 미친 듯이 싫어하는지 대강 이해가 되는 시간….(물론 그가 생활했던 곳은 이곳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나는 라스베가스와 LA의 건조한 기후가 꽤 마음에 들었다. 특히 라스베가스는 사막인데다 난방도 공기 히터라 더 건조했던 것 같은데, 점안액이 필수라는 점만 빼면 오히려 쾌적했던 듯. 피부는 평소에도 크게 안 땡겨서 샤워 후 미스트 한 방이면 괜찮아졌다.
 

신기했던 가게들. 오른쪽은 뭐 하는 가게인지 아직도 모른다.


짐을 대강 정리하고 룸메에게 바디워시를 빌려 샤워를 한 후 빵떡이와 호텔 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체력이 꽤 회복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ㅋㅋㅋ 낮 시간의 징징거림은 젖음과 추위의 지분이 90%였음을 깨달을 수 있다.) 주 목적은 앞서 말한 바디워시 공수였으나, 건물이 넓어서 볼 만한 편의시설이나 가게도 많아서 눈이 무척 즐거웠다. 늦은 저녁이라 닫은 매장이 많았지만 조금 일찍 본다면 둘러보기만 해도 하루 저녁 정도는 금방 갈 듯했다. 비슷한 예시를 들자면 우리나라에서 20~30여 년 전에 유행했던 종합리조트 느낌? 부대시설이 많고, 모든 것을 리조트 안에서 해결하는 것을 추구미로 삼았던 구조와 유사하다. 큰 건물과 복합문화공간을 좋아하는 연일생에게는 그 자체로 관광지였다.
푸드코트는 당연하고 재즈 바와 스타벅스도 있고. 슬러시 기기가 신기하게 생겨서 먹고 싶었지만 감기가 나와 던질까말까던질까말까 하고 숨막히는 밀당을 하고 있었기에 자제해야 했다. 저는 으른이니까요 마시멜로 참을 수 있다고
 


여기 편의점에서 배팅 칩 초콜릿을 샀어야 했어
다른 데에서 살 만한 기념품이 그렇게나 없을 줄 몰랐지….

 
옆의 또다른 큰 카지노 호텔과 지하로 이어져 있었다. 풍경은 비슷비슷.

 
체험 삼아 2달러도 잃어 봄
나는 룰렛처럼 최소한 두 번은 당기는 건 줄 알았는데 원클릭 가챠라 몹시 실망하고 손을 털었다. 나는 맛만 봤는데 진지하게 시도한 사람도 있었던 모양...? 개중 60달러 번 사람도 있었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다 잃음으로써 균형을 맞추었다. 가이드님께서 돈을 잃는 게 축복이며 한 번 따서 도박에 중독되면 답도 없다고 몇 번을 강조해 말씀하셨다. 원체 확률충인데다 스스로의 자제력을 믿지 않는 연일생은 이런 부류에는 아예 손도 안 대는 편이다.
 

오른쪽의 쇼에 대한 설명...

 
뭔가 가려진 극장 같은 곳에 사람들이 소지품 검사를 하며 한 명씩 들어가길래 뭔가 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육질의 남자들이 벗고 나오는 그런…쇼였음….
할머니 두 분이 커튼 안쪽을 보며 꺄악 꺄악 하시던 모습 상당히 순수해 보였는데…. 그래 순수한 기쁨이긴 하겠다…. 그리고 이어져 있는 호텔에는 여자들 스트립 쇼가 있었다는 후문.
이런 게 이렇게나 공공연하게 상영한다는 사실에 유교걸의 동공은 빠르게 흔들렸고…. 이튿날에 직접 로비에 나와서 홍보하시는 남자 배우분을 마주쳤는데 상탈하고 계셔서 눈도 못 마주치고 황급히 도망갔다고 한다.
 

 
구경을 다 마치고 방에 돌아왔지만 룸메는 아직 안 들어온 상태였다. 해외 물갈이 방지로 유산균 잔뜩 든 꾸덕한 그릭요거트를 먹고, 룸메에게 나 먼저 자겠다, 혹시 문 안 열리면 이 번호로 전화하라는 카톡을 남기고 잠에 들었다. 잠에 들었다기보다 침대에 빨려들어갔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룸메가 내가 불 켜고 자고 있었다며 늦게 들어와서 미안하댔는데, 나는 아무데서나 잘 자서 정말 괜찮다고 답해줬다. 그리고 진실이었다. 나는 룸메가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잤다.


○2일차

 
가이드님이 시차 적응이 어려울 거라시더니 과연 예언대로 4시에 깼다. 어떻게 시간까지 정확히 맞추신 거지?! 어제 저녁 잠들 때는 너무너무 피곤해서 코웃음치고 잤는데 생활패턴이란 게 정말 무섭다.

 
아침은 호텔 조식. 혹평이 많아서 걱정했는데 메뉴 라인업도 좋고 하나하나 다 맛있었다. 아메리칸, 유러피안, 아시안, 디저트 및 음료 등으로 코너가 나뉘어져 있었다. 오늘의 메뉴 코너에서는 줄을 서서 기다리면 스테이크나 바베큐, 커다란 갑각류 등을 갓 구워 내주었다. 뷔페 좋아하는 나는 신나서 폴짝폴짝 뛰며 위용량 110%를 채웠다. 하지만 내 돈 내고 먹었다면 많이 실망했을 가격은 맞는 것 같다…. 라스베가스의 외식비는 비쌌다…. 그리고 연일생은 근본 호텔 조식을 좋아하는 탓도 있다. 메뉴나 맛과는 관계없이, 여행지 숙소 특유의 기분 좋은 낯섦이 아침식사까지 이어지는 게 좋기 때문.
나와 빵떡이, 다른 조원 둘, 교수님까지 다섯이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다. 이쯤에서 조원들 이름이 필요할 것 같으니 짬선배(사유: 연일생 연구실 생활 역사상 가장 많은 짬을 때린 선배임)와 지사장(사유: 학생창업 사장님이심) 이라 명명하겠다. 각자 흩어져서 요리를 담아 왔는데 나와 교수님의 접시가 비슷했고 나머지 세 명의 접시가 또 비슷했다. 나와 교수님은 첫 접시에 채소와 해산물을 많이 담는 타입, 빵떡이와 짬선배, 지사장은 완전히 아메리칸. 소시지와 베이컨, 스크램블 에그, 팬케이크로 가득찬 접시를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상기한 바와 같이 미국의 밍밍한 블랙커피를 좋아하는 연일생은 보일 때마다 부지런히 뽑아 마셨다. 테이블마다 타바스코와 설탕, 후추, 소금, 대체당 등이 구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취향에 맞게 설탕도 잔뜩 넣었다. 아침식사 후 설탕 때려넣은 카페인 마시면 기분이 술 마신 듯 좋아진다(슈거하이+카페인 각성효과=살짝 돌음).

대체당은 오른쪽 사진과 같이 세 종류 있었는데, 가는 식당마다 이 세 가지가 구비되어 있었던 걸 보아 상당히 보편적인 제품인 듯. 셋 모두 덱스트로스가 주성분이고, 순서대로 말토덱스트린과 수크랄로스, 말토덱스트린과 아스파탐, 사카린과 칼슘 실리케이트가 더해졌다. 집 가서 블라인드 테스트 해 보려고 하나씩 챙겼다.
 

 
교수님의 말에 의하면 관광객이 외국에 가서 이국적이라 느끼는 가장 첫 번째 부분은 식생이라고. 다분히 농대스러운 발언임과 동시에 무척 설득력 있게 들렸다. 야자수와 각종 침엽수들이 등장할 때마다 이국적이고 멋진 풍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드디어 CES 박람회장. 우리 여행의 주된 목적.
 

 
메인 홀에 들어가자마자 관객을 반기는 LG의 긴 가로 디스플레이. 이게 국뽕이지;;
다양한 사은품을 수납하기 위해서인지 입구에서 Nikon 가방을 자유롭게 들고 가도록 걸어 두었다. 재질이 딱 이마트 가방이라 나도 모르게 반납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당연히 가지고 가는 거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메인홀은 대체로 모든 컨텐츠가 게임으로 귀결되었다. 당연하게도 IT 계열에서 가장 흥미를 끌기 쉬운 체험이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

 
●LG
메인홀로 들어가는 길목에 LG가 몹시 큰 디스플레이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게 진정한 국뽕이지…. 엘지의 주 테마는 역시 자신있는 디스플레이와 백색가전, 게임과 사운드. 전반적으로 부스가 반짝반짝하고 어딘가 지스타 같았다. 길게 늘어뜨린 부스 내내 각 분야의 기술을 자랑하는 모델을 걸어 둔 정석적인 배치.

커브드 모니터를 자랑하는 체험존에서는 교수님과 빵떡이 모두 직접 앉아 게임을 해 보았다. 왠지 납득가는 인선;

 

 
●ADT
개인적으로 메인홀 중 제일 재미있었던 부스. Safety at home, safety at working, safety at mobile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약식화된 작은 모델하우스처럼 꾸며 두었다. 각 섹션의 설명을 듣고 도장을 모으면 가챠를 돌릴 수 있는데, 나는 ADT 로고가 새겨진 머그컵을 받을 수 있었다.
Safety at mobile의 서비스가 정말 인상 깊었다. 평소에 가장 관심이 많고 동시에 불안해하는 부분이 안전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ELEMENT CASE
무료로 검볼과 보드를 나눠주는데, 보드 줄이 부스를 한 바퀴 감았길래 포기했다. 검볼만 하나 뽑아 질겅질겅 씹어 보았다.
 

 

●롯데
큰 계단을 만들어 단체로 VR을 시켜줬는데 애지간히 못 만들었다…. 메타버스로 면세점을 둘러본다는 컨셉 자체도 구리고 길은 가는 족족 막혀 있고 쇼윈도로 실제 제품을 구경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디 개발사의 프로토타입도 이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그런 것 다 제치고서라도 없는 3D멀미도 불러일으키는 미친 감도의 VR이 너무너무 힘들었음;;; 앉혀 놓은 채로 이동시켜야 하니까 왼쪽 휠을 걷기, 오른쪽 휠을 시점 이동으로 만들어 뒀는데 세상에 맙소사 시점 이동이 스크롤식이 아니고 조금씩 덜컬덜컥 스위치되는 방식이었다. 광각은 심하지 시점은 덜컥덜컥 바뀌지 가는 길은 족족 막혀서 제자리걸음이지…. 하는 내내 식은땀 나고 이후 30분간은 토할 것 같았다. 휘청거리고 있으니까 한국인으로 보이는 직원분이 welcome back이라고 해줬다. VR의 퀄리티는 이 분과 전혀 관련이 없겠지만 무언가 킹받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음ㅋㅋㅋㅋㅋㅋㅋㅋ

오른쪽 사진과 같은 의도를 알 수 없는 그립톡을 줬는데 화면에 계속 재생되던 메타버스 엔믹스 콘서트 영상(특: 개 조잡했음)으로 미루어보아 사이버틱한 무언가와 K-pop을 조합한 아닐까? 하지만 너무 일본만화 캐릭터 같아서 진의는 알기 힘들다.


 
●Hisense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인가 본데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뒤쳐진 수준이라고. 고사양 모델치고 비교적 낮은 화소와 두꺼운 베젤 등…. 하지만 화면 자체의 미감은 보기 좋았다.



●SK
넓은 공간을 학교 축제 귀신의 집처럼 검은 현수막으로 둘러 두었다. 어두운 곳에서 해수면을 연상시키는 조명을 밟으며 세계의 유적지들이 물에 잠기는 LED 액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화면이 바뀌며 환경 문제를 암시하는 메시지가 나온다. 그 공간을 빠져나오면 SK의 친환경 사업 캐치프라이즈가 거대하게 걸려 있는 복도가 나오고, 이내 시야에 빛이 확 들어오는 산뜻한 흰색 공간에 도달한다. 감정이 잔뜩 고조되는 구성.

 

마찬가지로 섹션별로 도장을 모아 가면 룰렛을 돌려 상품을 준다. 각 섹션은 SK의 친환경 에너지 및 IT 사업을 홍보하는 대형 스크린을 중심으로 배치해 두었고, 영상을 기본으로 게임이나 VR 등의 변주도 주었다. 사력을 다한 게 느껴지는 지점. 배터리 재활용에 관한 영상이 꽤 인상적이었는데, 재활용 과정을 영상으로 설명한 후 마지막에 마치 영상에서 튀어나오듯 실제 컨베이어 벨트에서 배터리가 나오는 연출이었다.
에너지 활용 영상 섹션에서 도장을 받으려 하자 찍어주시는 분이 도장을 한 손에 인질처럼 들고는 뭘 배웠냐고 기습적인 질문을 했다. 정말 안 듣고 있던 차에(ㅋㅋㅋ) 영어로 장황하게 설명할 재간이 없는 나와 조원은 각각 "alternative energy…….", "ecoplanet"라고 한껏 수동적인 단답을 하여 직원분을 빵 터지게 했다.

 


경품은 꼴등상인 스티커. 오히려 좋아. 꽤 트렌디한 감성으로 잘 뽑혔다.
 


●TCL
중국 기업인데 부스가 아주 크고 예뻤다. 눈에 띄었던 기술은 Warable smartglass. 기술 자체는 아주 오래되었는데 마땅히 활용할 방법을 찾지 못해 실용화되지 못했다는 모양. 어쩌면 TCL이 활용처를 발굴해 줄지도?
 

 
●SONY

개인적으로 top3 안에 들게 재미있었던 부스. Glass-free 3D 모니터가 정말 정말 인상 깊었다! 내 시선을 추적하여 시선에 맞춘 방향으로 3D 영상을 출력한다는 모양. 당연하지만 입체감이 장난 아니었다 (그게 3D 모니터니깐요)
플스관도 있었는데 그냥 평범하게 전시되어 있었고…아는 게임이 보여 반가웠다.

자동차가 예쁘게 잘 빠졌다. 소니 자체에서 생산하는 건 아닐 테고 콜라보이거나 기술만 보여 주는 것일 테지…. 자동차를 보고 예쁘다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 이건 정말 예뻤다. 반대로 말하면 흔히 자동차에서 추구하는 미학과는 거리가 좀 있다는 뜻일까?

●삼성과 니콘 부스는 사람이 너무 많아 다음날에 보기로 했다.
 

예쁜 버스.

둘러보긴 귀찮았으나 일부 시선을 끌던 부스들의 자잘한 사진들.

 
이쯤에서 인파에 지쳐 뭔가 리프레시를 하기로 했다. 점심은 딱히 먹을 것도 없고 비싸기만 하니 굶으라는 가이드님의 추천을 또 흘려 들었다가 역시 맞는 말씀임을 거듭 깨달았다. 밥 될 만한 게 전혀 없잖아! 한국인이 밥을 포기할 정도라면 대강 설명이 되리라 생각한다. 행사장 자체도 무지막지하게 넓은데다 미국 특성상 인접한 식당이란 것도 없어서 나가서 사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는 수 없이 탄산음료로 가성비 리프레시를 하고 North Hall로 이동했다.

일생: 노스홀에는 뭐가 있는데요?
조원 선배: 무언가 좋은 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일생: oO(모르는군)

그러나 그의 말이 고장난 시계처럼 맞아들어가 무척 흥미로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헬스케어 관련 기업이 많아 생물학 분야를 하는 우리에겐 이쪽이 훨씬 재미있게 다가왔기 때문. 특이하게도 헬스케어 쪽에는 한국 기업이 엄청 많았다. 우리나라 진짜 IT 강국이야? 나 좀 안 믿었는데 진짜인가 보다.
 

●대구경북


학교 탐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조사하기 위해 들른 대구경북 기업 kuvings. 소형 체성분분석 기기를 착즙기에 부착해 두어, 매일 아침 개인맞춤형 추천 조합을 추천받고, 그에 맞는 과채주스를 혼합해 먹으면 된다는 아이디어이다.
가격 부분과 해당 과채를 즉시 공급받을 수 없다는 부분을 생각하면 단순한 더함 이상의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으나…. 훗날 우리는 이 부분을 develop하여 발표를 준비하게 된다.

●서울

 
왜 여기 있는지 알 수 없는 서울 홍보 부스. IT 관련도 아니고 그냥 서울시 홍보 부스다…. 슬로건에 투표를 하고 해치가 그려진 프레임의 인생네컷을 찍고 왔다. 교수님과 인생네컷이라니 다시 없을 경험;;


●3M
너도나도 전기차 사업에 뛰어드는 건 알고 있었지만 3M도 시도한다니 조금 웃기는 것이다…. 교수님의 사설로 이런 경우는 팔아서 수익을 볼 것이라 기대하는 것보다는 그 분야의 헤게모니를 얻기 위해 해당 분야에 발을 담그는 것에 가깝다고.

●vivoo

CES 이노베이션 상을 받은 디지털 헬스 부문의 소변 테스트기. 비타민 C, 마그네슘, 칼슘, 수분, 염도, 케톤기, 산화 스트레스, pH, 단백질을 진단할 수 있으며, 어플을 통해 (관련 분야 종사자라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 보았을) 개인 맞춤형 식단을 추천받을 수 있다. 단백질은 단백뇨 검진용일 테고, pH와 산화스트레스는 왜 진단하는지 짐작이 가고, 비타민 C는...왜죠? 그건 그냥 많이 먹으면 많이 나오는 거 아니야?

이하 자잘한 것들.
 


Sperm test를 왜 집에서 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지만 얘네는 병원비 비싸니깐요….


저주파 마사지기인가 본데 약간 허무맹랑할 만큼 효능을 좋게 설명했다.

 


GutNote. 역시 이노베이션 어워드를 수상했다. 소리와 연동운동의 모션을 감지해 대장 건강을 진단한다고. 솔직히 허무맹랑해 보이긴 하는데 연식이 좀 있으신 의사분들은 청진기만으로 기막힌 진단을 내리기도 하니깐요...? 그리고 요즘 AI 대세니까 학습시켰다고 하면 잘 먹히겠지.

사진은 없지만 반려동물 관련 기술도 무척 많았다. 헬스케어를 포함한 복합 관리 어플부터 홈캠과 연동한 이런저런 기술까지. 실제로 무척 넓은 시장이며 전망도 좋다고. 하긴 우리나라 반려견 처우 변화만 봐도 쉽게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어쩌다 이래저래 찢어지고 나와 교수님 둘이 남았다. 부스를 둘러보기 지칠 즈음 냄새에 홀려 버터팝콘을 받았는데 이곳이 헬스케어 섹션이란 걸 생각하면 참 모순적이다. 헬스케어 제품의 수요를 더 늘리기 위한 걸까? 이런 걸 많이 먹으면 곧 필요해질 테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
교수님과 벽 쪽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팝콘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회장에 거의 백인밖에 없지 않습니까?"하고 물었더니 "거의 모든 학회에서 다 이렇다"라고 답하셨다. 실제로 전시회장에 백인이 70, 동아시안이 30 정도고 나머지는 없다시피 했다. 기분이 미묘했다. 우리나라 국제 학회를 가도 중동과 동남아, 아프리카 출신도 꽤 많은데, 오히려 (낡아서 이제 잘 안 쓰는 표현이긴 해도)인종의 용광로라는 미국에서 적다니.

 


●EARGO
보청기 관련 기업. 청음 테스트를 해 주고 결과를 메일로 보내 주었다. 상품으로 이어플러그 증정.
돌아가신 큰이모가 보청기를 사용했을 때는 10년 전쯤이라 200~300 정도 돈을 주고도 삐 소리가 나서 영 불편했는데, 블루투스 노이즈 캔슬링 기술이 나오고부터 싸고 좋은 품질의 보청기가 많이 보급된 모양. 이외에도 장애인 신체 보조 제품이 꽤 보였다. 긍정적이다.
 


이…런 제품이 있었다….
이렇게 오픈된 곳에서 이…런 제품을? 움직이는 거 너무 숭했다….
 


●Co-dx

이 때쯤 찢어져 있던 교수님과 다시 만났다. 끽해야 다섯 명인 조원이 이래저래 찢어졌다 만났다 하는 걸 보면 짧은 줄글로 요약해가는 이 시간들이 사실은 얼마나 긴 시간 많은 과정을 거쳤는지 짐작이 가리라 생각한다... 더군다나 이 넓은 회장에서 각자 자신을 보아달라고 화려하게 구애하는 부스들을 두고서 한정된 시간 동안 최대한 기대에 부응하려면 한껏 마이페이스로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하여간 이 부스의 메인 상품은 가정용 미니 PCR 기기. 집에서 뭘 증폭할 일이 없으니 검출 쪽일 테고…집에서 전기영동 내릴 리가 없으니 real-time qPCR 쪽일 테고….
Primer는 다양한 병원균을 target으로 하는 것이 조합되어 있다고 한다. 시약은 튜브 안에 동결건조되어 있어 상온에 보관하면 되며, 타액을 넣어 섞은 후 검사하면 된다고. 친숙한 분야를 마주쳐서 마음이 몹시 편안했다.

 

●롯데 헬스케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상품! 키오스크 같은 화면에서 세 가지 질문을 통해 나의 건강습관 유형을 MBTI처럼 검사해 주고, 그에 해당하는 캐릭터 키링을 주었다. 디스펜서에 유형을 입력하면 빈 통에 해당 유형의 젤리빈 믹스도 넣어 주는데, 개인 맞춤형 영양제를 형상화한 모양. 아마 영양제는 규정 혹은 법적 문제로 못 넣어서 젤리로 대체한 거겠죠?

 

아주 간단한 기획인데 우리 학교 사람들 사이에서 반응이 상당히 좋았던 걸 보아 역시 캐릭터 사업이 대세인가 싶고…. 사람들 MBTI 좋아하고….

 


나는 코알라가 나왔다. 안 움직이고 일찍 일어나는 초식동물ㅋㅋㅋㅋㅋ 그리고 너구리(빵떡이)는 진짜 너구리가 나왔다!!!!
귀여워!!!!!!!
좋아할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육식 야행성 안 움직임)

 


원래는 아까 지나친 니콘을 보러 가려 했는데 너무 지쳐서 바닥에 널부러졌다. 중간에 찢어진 교수님과 다른 조원을 찾았더니 역시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버스가 널부러진 우릴 건져가줄 때까지 20분 정도 졸도했다.

 

 

버스를 타고 석식을 예약해둔 식당까지 가는 길의 풍경. 아름다운 색감이 인상적이다. 외국인들이 이국적이라 느끼는 지점에 순위를 매기자면 식생 다음에 하늘의 색이 와야 하지 않나 싶다. 국가에 따라 건축 양식이나 도로 풍경도 가능하겠지만...

 


저녁은 스시. 여기까지 와서 스시…? 메뉴는 많은데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것 없다고, 놀라울 만큼 젓가락 가는 게 없었다. 그나마 먹을 만한 메뉴도 맛대가리 없어서 먹다 말았다. 제가 이마트 홈플러스 스시도 진심 맛있게 잘 먹는 사람인데요…. 연어에서는 광어 맛이 났고 김밥과 롤은 질뻑한 밥을 꼭꼭 눌러 놔서 목이 막혔으며 간장은 국간장이었다. 나는 아직도 간장에 종류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쉐프가 어떻게 비싼 식당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총장님과 높으신 분들이 오셔서 인사를 드리고 술을 좀 먹다 숙소로 돌아갔다.

월마트에 들러서 필요한 사람은 내려 필요한 것 사라고 40분을 줬는데 나는 "안 내릴래" 하고 "뭐야 사람들 들어오네?" 사이의 기억이 없다. 사실 아직도 그 사이가 40분이었다는 사실을 못 믿겠다.

 

 

이어진 스케줄은 야경 투어. 기간 내에 어떻게든 관광 명소를 전부 집어넣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나랑 빵떡이는 관광 하러 온 게 아니다 보니 별 흥미도 없었고 그저 자고만 싶었지만...단체 관광 특성상 개인적으로 행동할 수는 없어서 강제로 내려졌다. 분수쇼…사실 그리…예쁘진 않았는데…그냥 유명한 걸 봤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나는 분수보다는 그냥 강이 마음에 들었다.

 

 

근처 풍경과 잠시 들어가 본 대형 백화점. 교수님께서 뜬금없이 '카메라 앞을 지나쳐가는 인파 속에서 피사체만 또렷하게 찍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며, 짬선배를 세워 두고선 나와 빵떡이에게 카메라 앞을 지나가 보라고 종용하였다. 시키는 대로 성실하게 왔다갔다하고 있자니 주위에서 이상하게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그렇겟지) 노출 시간을 길게 하여 가만히 있는 피사체만 또렷하게 나오게 한다는 모양. 신기술이나 디지털 기기를 적극 활용하기 좋아하시는 교수님께 매력적으로 들렸을 법한 팁이다. 와중에 짬선배는 잘 못 알아들어 본인도 왔다갔다하는 바람에 우리를 한참 동안 리트라이하게 만들었다. 패트와패트와패트;;

 

드디어 강제 관광이 끝나고(다른 이들은 못 가서 난리인 감사한 행사에 자꾸 징징대서 미안합니다, 이 땐 정말 너무 싫었습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곰 문 곰 문.

 
21시 반에 호텔에 도착해서 부랴부랴 22시에 문 닫는 코카콜라 스토어에 갔다. 미국에서는 밤에 돌아다녀선 안 되는 게 상식이지만 라스베가스 메인 스트리트 정도는 안전하다고. 하지만 한두 블럭만 벗어나면 마약하는 노숙자가 즐비한 우범지역이니 주의하라고 한다…. 하여간 빠른 속도로 코카콜라 스토어, 5층짜리 M&M 매장, 허쉬 매장을 둘러보고 23시쯤 귀가했다.

 

코카콜라 스토어는 2층에 콜라 분수가 있다고 하여, 콜라 마니아인 빵떡이가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우리가 갔을 시점에는 너무 늦어서 2층은 마감하고 폐쇄해 두었다... 하는 수 없이 각종 굿즈들이나 구경하다 나왔다. 의류나 액세서리, 인형과 모형부터 해서 상상 이상으로 많은 굿즈들이 있었다. 사진은 귀여워서 살까 말까 고민했던 마그넷(안 삼).

 

빵떡이는 콜라라면 환장하는 미친자이지만 코카 콜라 후드티를 입고 다니고 싶은 종류의 사랑은 아니라며 조그만한 기념품 두어 개만 샀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소소하게 두 개의 굿즈를 구매했는데, 내가 가질 것으로 투명 플라스틱에 콜라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는 플레잉카드, 오빠 선물로 콜라곰 인형이었다. 오빠가 콜라곰을 귀여워하며 나에게 CF 영상도 보여줬던 기억 때문. 우리 오빠는 굳이 인형을 사 모으는 타입은 아니지만 마음에 든 귀여운 인형은 내가 인형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좋아하는 것 같다. 좋아하는 정도와 사 모으는 정도는 일치하지 않는다.
 

슬롯머신과 단지. 웬 단지...? 요강처럼 생긴 게 웃겨서 찍었는데 이 문화권에는 cookie jar라는 게 있다더군요...

 
5~6층이었나 꽤 높았던 M&M 매장. 마찬가지로 무척 많은 굿즈와, 다양한 선물 패키지로 포장된 M&M들이 있었다. 초콜릿이다 보니 컨테이너에 다양한 변주를 줄 수 있어 조금 더 실용적인 굿즈와 선물이 많았다. 주위에 그럴듯한 선물을 줘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사볼 만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사지 않고 돌아왔다. M&M은 한국에도 많아...

종아리까지 오는 키의 꼬맹이가 디스펜서에서 초콜릿을 담고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헤 헤 헤."하고 웃었는데, 너무 귀여워서 빵떡이와 한동안 밈처럼 썼다. 헤 헤 헤.

 

 

허쉬 매장. 매장이 화려하고 초콜릿을 골라 담는 디스펜서가 있었지만 그 외에 별 건 없었다.

디스펜서의 다양함에 매력을 느껴 몇 개 골라 담았다. 저거 한국 와서도 꽤나 오랫동안 힘들게 먹었던 거 같음;; 원체 초콜릿을 잘 안 먹는데 초콜릿에 대한 낭만만 있어서 곤란하다.

 
 
학회와 쇼핑의 전리품 정리! 빳빳한 호텔 시트에 물건을 늘어놓고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한다.
기절할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샤워를 후다닥 마친 후 잠에 들었다.

후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yeonilseng.tistory.com/239?category=90429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