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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생 종합도서관

1월 독서기록

by 연일생 2023. 1. 22.

 



1. H마트에서 울다
올해(읽은 사람 기준)의 책… 이걸 읽다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어머니를 향한 사랑과 애증,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연민하는 마음, 사랑, 결핍,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 보통의 것이라 많은 공감과 위로가 되었다. 저자의 어머니가 객관적으로 좋은 어머니가 아니었고, 그럼에도 둘도 없는 친구였던 모순된 유대 역시도 너무나 그 시절 모녀관계의 그것이라.

저자의 어머니는 가정의 돌보미 역할에 충실하기를 요구받았고, 착실히 그 역할을 수행해낸 전형적인 기성세대 어머니상이다. 그래서 종종 세대가 다른 자식의 입장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를 가하기도 한다. 어린 자식이 나무에서 떨어져 다쳤는데도 걱정보다는 분노를 앞세워 소리를 지르고, 집을 병적으로 예민하게 관리하며, 자식의 외모를 품평하고 깎아내리며 개선을 강제하는 등 미국에서 자란 미셸에게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이 모녀의 갈등은 작가가 꿈을 위해 집을 나가 살 때까지 지속된다. 가장 마음에 먹먹하게 남았던 대목은 이 다음 부분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둘 사이에 적절한 거리가 생겼을 때, 부모님은 작가의 동네로 놀러오기로 한다. 작가는 여느 독립 음악가들이 그러하듯 생활고로 인해 다 쓰러져가는 아스팔트 집에서 이가 죄다 하나씩 빠진 접시를 쓰며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작가는 부모님께 훌륭하게 자란 자신을 보여줄 생각에 들떠, 남자친구와 함께 비싼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최상의 것들을 준비해 둔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가려던 때 어머니는 H마트에 들러 갈비를 재워 두고 가겠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내가 떠난 뒤에도 네가 오랫동안 좋은 것을 먹을 수 있지 않겠냐고. 작가는 그렇게 하기로 하지만, 어머니께 집을 보여주는 순간부터 내내 그녀의 잔소리를 기다린다. 무너진 벽, 이가 빠진 접시, 맞지 않는 가구를 지나칠 때마다 긴장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무 말도 없이 웃는 얼굴로 갈비를 재울 뿐이다. 작가는 꼭지의 말미에 이렇게 저술해 두었다.

 

"엄마는 내가 딱 이렇게 살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느라 평생토록 안간힘을 써왔다. 그랬던 엄마가 지금은 그냥 미소 띤 얼굴로 부엌을 왔다갔다하고 있는 것이다. (…) 어쩌면 엄마는 그동안 내가 원치 않는 무언가로 나를 만들어보려 한 자신의 노력이 결국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더이상 노력하기를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차피 내가 이런 식으론 1년도 더 못 버티고 결국 엄마가 옳았다고 생각할 거라 믿고 전략을 더 세련된 걸로 바꿨는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 사이에 벌어진 5천 킬로미터라는 거리 때문에 그저 나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뻤는지 모를 일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나만의 길을 개척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찾았음을 비로소 받아들이고, 마침내 내가 어떻게든 잘해낼 거라고 믿게 된 걸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투병기부터 장례식까지의 부분은 정말 많이 울었다. 나 역시 어머니가 큰이모의 간병생활을 하는 걸 봐왔고, '살기 위한 과정'과 '죽어가는 과정'이 구분되지 않는 생활의 처참함을 안다. 그 대상이 자신의 어머니인 상황이, 아직 어린 나이인 미셸에게 얼마나 거대한 슬픔으로 다가왔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정말 눈물이 줄줄 났던 부분은 작가가 어머니의 꿈을 꾸는 대목이었다. 그 내용이 내가 부정하고픈 일을 겪었을 때의 꿈과 너무도 비슷해서. 내 착각이었을지 모른다는 비참한 희망이어서.

작가가 '글'을 정말 잘 쓴다. 내용 구성도 그렇지만 언어학적으로 정말 뛰어나 책을 읽는 내내 감탄뿐이었다. 한편 자신의 감정에 이렇게 진솔하게 다가설 수 있는 올곧은 사람도 얼마 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어머니의 간병을 위해 어머니와 알고 지내던 한국인 아주머니가 찾아와 준다. 자신이 쓸모있음을 증명받고 싶어하며, 애착의 대상을 통제하려는 욕망이 있는 사람. 그 행적을 읽고 있노라면 반드시 주위에 한둘쯤 떠오르는 얼굴이 있는, 전형적인 한국인 중노년 여성상. 정말 고맙고 스스로 염치없게까지 느껴지는 상황인데도 미셸은 그녀로 인해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 감정의 서술이 놀라우리만치 솔직하다.

몇 번이고 곱씹게 되는 보물 같은 책. 이 책을 읽고 다시 독서에 재미를 들였다.

 


2. 반려공구
공구에 대한 설명과 함께 작가의 경험과 인생에 대한 짧은 통찰을 덧붙인 에세이. 재미있었다! 공용 공구함처럼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공구들의 개념이 제자리를 척척 찾아가며 정리되는 감각이 좋다. 생김새와 대강의 사용처만 알던 공구들의 명칭, 바른 사용법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속이 시원해졌다. 특히 관성적으로 쓰던 '그거'의 이름이 플라스틱 앙카였다는 걸 알았을 때!
너무 좋아서 그림과 함께 필기해 보았다.

 


3.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한동안 베스트셀러에서 내려가지 않던 SF 단편집. 이제야 읽어보았다. 보통 단편집은 가장 자신 있는 단편을 가장 첫 번째순서에 두게 마련인데, 개인적으로 첫 번째 단편이 가장 흡인력이 떨어진다고 느꼈다. 액자식 구성이 두 번 들어가서 진입장벽이 조금 있기 때문. 하지만 두 번째 단편을 읽었을 때 여운을 갈무리하지 못해 삼십 분 동안 차창 바깥만 바라보았고, 세 번째 단편을 읽었을 때 이 작가가 괴물 신인 작가로 불리우는 이유를 납득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단편들도 감탄뿐이었다. 광속불가, 감정의 물성, 관내분실…작가의 지독한 휴머니즘과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비관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것은 힘들고 힘들기에 위대하다. 나는 이러한, 연애관계에 국한되지 않은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줄인다. 연구과제 돌아가는 방식과 랩 생활에 대한 고증이 200% 잘 되어 있다.

 


4. 불편한 편의점

가벼운 문체와 쉬운 내용으로 아주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책. 재미있고 따뜻한 휴먼드라마이다. 이런 장르의 전형적인 구성에서 크게 벗어났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클리셰는 아름다우므로 클리셰인 것이다. 쉬운 말로 마음을 울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거야말로 대단한 이야기꾼이리라.

거대한 옥수수수염차 세계관…이거 보고 옥수수수염차 사 먹었다.



5. 천 개의 파랑

읽는 중. 2월 내에 완독할 것으로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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