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 I Stay/개똥철학

아무도 우리를 지우지 않았네 누구도 우리를 분류하지 않았네

연일생 2022. 11. 14. 01:24

 


제목은 황소윤과 재키와이의 <FNTSY>에서 발췌


1.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 쓰인 사람을 변화시키는 방법 중에는 '지키고 싶은 좋은 평판을 주는 것'이 있다지.
나는 누군가가 만들어낸 페르소나가 하나 있다. 오직 그를 위한 자아. 진실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그의 기댓값에 맞추어 존재하고 싶은 자아.
그는 기실 사람 보는 눈이 참 없다. 누군가를 정의하려 하면 할수록 초점이 어긋나서 전혀 딴소리를 하고는 만다. 그것은 어쩌면 그가 지금처럼 살아오기를 택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터이며, 그렇다면, 내가 아는 그 역시 그가 나에게 비추는 특별한 페르소나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관계는 대체 불가능한 관계가 되고 마는 것이다.
꼭히 아름답거나 절실하지는 않지만 대체품을 찾는 것은 평생에 걸쳐 불가능할 그런 독특한 것들.


2.
나는 기본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고 항상 자부하지만, 동시에 오랜 시간 우울해왔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걸 벗어난 지금에야 깨달을 수 있을 만큼 아주 오래 전부터. 항상 생각이 많고, 단순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할 만큼 여러가지 복잡한 시야에 시달리다가, 자책도 원망도 쉽게 해 버려 종내는 감정의 파도에 떠밀려 내려가고는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그 많은 생각과 감정의 속에서 헤엄치는 순간들 속에서, 죽도록 미워하고 원망하던 이를 끝내 동정하게 될 때만큼 슬프고 억울한 시간은 없었다.
스물둘의 나는 용서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법을 배웠고, 스물다섯의 나는 이제 용서하고 싶은 사람을 용서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하여 무절제한 용서는 사라졌고, 지금의 내가 내리는 용서야말로 '진짜' 용서일 것이다. 나는 최초로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지 않도록 만든 그 사건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용서를 해도, 하지 않아도 아무런 달라질 것이 없는 상황에서, 나는 어쩌면 처음으로 그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에 대해 잘 몰랐으면서 너무 가까웠던 시기도, 너무 미워해서 멀리했던 시기도, 모든 감정을 연소하고 무(無)로 돌아갔던 시기도 지나 적당한 거리가 생긴 지금에 와서야.
그는 그냥 어렸다. 기본적으로 주위에 영향을 많이 받고, 외양만큼 단단하지 못하고, 사소한 상식에 약한 사람이다. 그 점이 나를 괴롭게 만든 건, 아마 우리가 동등한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일 터이고 나도 그도 끔찍하리만치 힘들었던 시기와 맞물렸기 때문일 터이고…내가 그에게 기대했던 상식이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그가 가엾지 않고 아주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가 왜 그랬는지를 알게 되자 예전만큼 말종으로 보이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미 꺼진 내 증오의 재를 치우고 싶어졌을 뿐이고, 먼지를 털고 창을 닦아 내 시야를 어지럽히는 앙금을 버려 버리고 싶어졌을 뿐이다.


3.
흑인 동료가 나에게 다른 랩실 사람을 소개하기 위해 black one이라는 말을 쓰는 걸 보면 기분이 묘해진다…. 그가 굳이 그 단어를 쓴 건 내가 알아먹기 쉬우라고 한 것일 테고 그런 카테고라이징에 아주 익숙하다는 의미일 테고….
흑인이라는 말은 너무 얄팍한 단어다. 나는 다른 누군가에게 그를 설명할 때 단 한 번도 그 단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위의 문장에 사용한 것조차 너무나 불편하다. 흑인을 흑인이라 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말은 인종이 사소한 정보로 취급될 때나 가능한 말이고, 현실에서는 그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가려지는 그의 모습이 너무 많다. 내가 아는 그를 온전히 담을 수 없게 하는 불순물이다.

그는 키와 골격이 상당히 크고 다부지며, 속눈썹이 길고 짙으며, 몸짓이 절도 있다. 유머가 있지만 무례하지 않고, 기본적인 예의가 철저한 사람이다. 일하는 도중 동료에게 무언가를 물어볼 때면, 불쑥 끼어들지 않고 항상 옆에 가만히 서서 기다린 후 헛기침을 한다. 듣기로는 굉장한 royal blood로, 과연 그에 맞는 품위를 가지고 있으며, 물건을 보는 안목도 좋고 옷차림도 단정하다. 그럼에도 힘을 쓰는 것이나 먼지가 묻는 것에 망설이지 않는다. 풋볼을 잘 한다. 축구 팬인 교수님께서 선수급이라고 칭할 정도로.
신체적인 유능함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black에 갖는 편견의 무엇에도 해당이 되지 않는 그가 그토록 쉽게 black one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건, 누군가는 그를 black의 납작한 이미지에 투영해서 보아 왔다는 뜻이고,
영민한 그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다는 뜻이다.

내가 해외에 나가서, 주문을 받지 않고 무시하는 점원이나 호의의 뜻으로 합장 인사를 하는 거래처 사람을 매번 겪고 살면서, 옆 랩의 친구를 말할 때 'that Asian girl'이라고 말하는 심정은 어떤 것일까….
소외된 자들은 주역들이 평생동안 이해할 수 없는 어떠한 깊이가 있고 그것에 자부심을 느껴도 좋다고 생각한다.


4.
가끔씩 과분한 애정을 받을 때면 기분이 이상하다…. 부당함에 본능적으로 반항해온 내가 그의 제멋대로인 비위만은 거스르지 않고 싶어 눈치를 보던 날에, 그 역시 내게 미움받을까 노심초사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기분이 눅눅해진다.
모두라고 에둘러 말했지만 그냥 내가 눈치를 보는 게 마음에 걸렸던 거겠지.
나는 그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유대감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 그것이 소중하면서도, 그 유대감이 어떤 과거에 기반해 있는지를 떠올리면 때로 비참해지기도 한다. 매일 그의 눈길을 구걸하던 상처 입은 짐승은 매일 밤 울어야만 잠에 들었다.* 짐승은 자라서 동등한 인격체가 되었다. 그래도 그와 나의 유대감은 그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여전히 그는 나를 금방 깨지고 말 유리잔을 대하듯이 한다. 그 사실은 가끔 나를 너무나, 부끄럽고 한심스럽게 한다.

*검정치마의 <어린양>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