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생 2021. 7. 25. 02:31

앞뒤가 안 맞는 말을 싫어하는 건 나의 나쁜 점이다.
사람들은 생각 없이 말을 하고 사려 없이 생각을 한다.
그 점에 발끈할 이유는 사실상 없다.

어른에 대한 나의 정의는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안정감이 있다. 그래서 높은 계급에 위치한 사람도 가끔 어른으로 보이지 않고, 나보다 어린 사람도 종종 어른으로 보인다.
남을 속이는 건 상관 없지만 스스로는 속이지 말아야 한다.
조금 양심이 모자란 짓은 해도 그걸로 비난받는 걸 억울해하진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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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를 하면 건조해진다.
단순히 습기를 닦아냈기 때문이라고 보기엔, 그 효과가 크다.
아마 유기물이 수분을 많이 잡아둘 수 있는 모양이다.
혹은 그 유기물에 번식한 미생물이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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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은 두 가지의 기간을 가진다. 지키는 게 즐거운 때와 지켜야 하는 것에 압박을 느낄 때. 그리고 잠깐 멈추어 리프레시를 하면 전자로 돌아올 때가 많다. 능률을 위한 휴식이라는 건 늘 어렵다. 특히 매일매일 당일이 기한인 일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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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를 만들러 원데이클래스에 갔는데 사장님이 사담을 건네더란다. 몇 가지 대화가 지나가고 물었다. 사장님 전공은 뭐였어요? 향수 샘플을 조합하는 용기가 주로 화학-생물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튜브라 나온 질문이었다. 사회학과라 했다. 대학원에서 논문을 썼는데, 지도교수가 지시한 것과 반대의 주장을 해서 논문지도도 못 받고 쫓겨났단다. 사장님은 교수님이 페미니스트였다고 말하며, 본인은 그게 싫다고, '여자들의 사회 진출이 증가했지만 반대로 남자들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라고 논문을 썼다고 했다. 그리고 그 근거로 유흥업소 이야기를 했다. 조사를 해 봤는데 대학생들이 공강 시간에 그런 곳에서 알바를 한다며. 명문대생들도 다 한다며. 주변에서 명품백 들고 다니는 애들이 워낙 많길래, 돈이 어디서 나나 했더니 그런 거였다고 했다. 마지막 부분은 지레짐작일까? 불쾌했는데, 딱 잘라 불쾌하다고 말하지 못해서, 대화를 시작한 것을 후회했다. 거기서 깡패처럼 '어머 구찌 들고 다니는 과 선배도 호빠에서 알바하는 걸까요ㅜㅜ'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그 이상 대화를 늘려서 더 불쾌해지고 싶지도 않았고, 옆에 비싼 브랜드 입고 다니는 어나더 맨이 있기도 해서 닥쳤다.

날이 갈수록 누군가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듣는 게 두렵고 또 실망하는 게 두렵다. 세상에는 명품백을 들고 다니는 여자를 보면 '저 여자 유흥업소 다니는구나' 하는 여자가 있고, 그걸 손님에게 스몰토크 주제로 건네는 사장도 있다. 사람들은 생각 없이 외로워하고 사려 없이 소속되려 한다. 소외당하고 배제당하는 건 너무 무서운 일이다. 그래서 소속집단의 상식을 쉽게 믿고 쉽게 편승한다. 그게 억울할 이유는 사실상 없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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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입을 못 뗀 이유가 그게 전부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스스로를 속이지는 말아야 한다. 난 그냥 그런 쪽으로 용기가 없다. 어릴 땐 분홍색과 치마만 보면 도망쳤고, 중학생 때쯤엔 유행하던 OO녀 욕하기 놀이에 빠르게 탑승했으며, 대학생 2~3학년 때는 남자들과 허물 없이 섞여 노는 걸 훈장으로 여겼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누가 봐도 명백히 불쾌할 만한 상황에서조차- 그런 말이 불쾌하다고 말하는 게 두렵다. 어쩌면 향수 공방 사장님에게 느낀 건 동족혐오일지도 모르겠다. 우습다.
두려워하기 때문에 피하고, 피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디까지를 상식적으로 불쾌할 만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감이 없다. 그래서 '걔네 방이라도 잡아 줘야 하는 거 아니냐'라는 둥, '걔 제발 치마 입고 출근하지 좀 말라 해라'라는 둥……. 그런 말을 들어도 내 잘못이라 생각하고 만다. 누가 그랬어? 발끈하며 화내 주는 사수 언니의 반응에 어리둥절했고, 눈물이 났다. 그런 말을 듣는 게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 6개월 동안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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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걸 포기하지 않고 부당함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싶다.
개뻔한 클리셰 웹소설에서 찾아낸 귀중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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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해봐야 왜 하면 안 되는지 아는 것 같다. 대학생 1학년 때까진 남 욕을 거의 하지 않았다. 어디서 주입당한 건지 모르겠지만 무의식의 기저에 "뒷담은 나쁘다"가 거의 항진명제처럼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남 욕을 그리 나쁜 짓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점차 리미트가 풀렸는데……. 실컷 해 보니 그리 자주 안 하는 게 낫다는 걸 깨달았다. 딱히 그것 때문에 물 먹는 일은 없었는데도. 습관성 분노와 원망-기반-난동시뮬레이션도 마찬가지.
싫어하는 선배가 다른 선배들을 게으르다며 욕하더란다. 부사수에게 전부 시키고 손가락 까딱 안 하는 것들은 연구자의 자격이 없다면서. 남을 헐뜯는 말은 하기 쉽고, 누구나 단점이 있기에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을 뿐이지, 여전히 그의 통찰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도 책임감 없는 부분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하하.
남을 물어뜯는 말을 좋아하게 만드는 사회는 나쁜 사회다……. 누가 총대를 메냐의 차이일 뿐 이곳의 모두가 그러고 있다. 그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데, 잘 안 된다. 최소한 남의 말에 신경이라도 끄고 싶다. 의미 없는 놀이인 걸 인지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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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 하다 보면 필리파좌가 자꾸 생각나는 것이다…….
나쁜 마녀가 하나 나타나 준다면 서로 미워하지 않고 으쌰으쌰하며 살아갈 수 있겠지. 하지만 그따위 얄팍한 평화는 없는 게 낫다. 공공의 적으로 합당한 건 권력자뿐이다.
시민들에게 뭔갈 하나 던져주고 서로 싸우게 하는 게 가장 악질적이고 기초적인 통치 방식이라던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이간질은 쉽다. 사람들은 미워할 명분만 있으면 언제든 서로 미워할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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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해인사에 들렀다. 절은 대단한 곳이다.
소박함과 우직함으로 사람을 압도되게 한다.
사람들을 그들처럼 살고 싶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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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받는 건 좋다. 자기소개서를 검토해주시던 선배에게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다. 어려운 말을 술술 잘 쓴다며, 어른이 쓴 것 같다며, 한국어가 기본 장착되어 있다며. 사실 내가 봐도 그랬지만 혈관에 흐르는 동방예의지국의 피가 간신히 날 겸손하도록 했다.
사실 내가 기본적으로 뭐든지 많이 배우려는 성정인 것에는 꽤 얄팍한 이유도 포함되어 있다. 전문분야에서 인정받기는 어렵지만, 해당 분야에서 필수가 아닌 능력은 칭찬받고 주목받기 쉽기 때문. 무기가 될 수 있느니 어쩌니 거창한 말을 쓸 수도 있지만 내 무의식이 거기까지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아무래도 인정욕구도 강하고 자기효능감 중독인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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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에타 대학원생 게시판. 명작이라 주기적으로 보러 간다. 문창과 대학원생도 이런 건 못 쓸 것이다. 인문대 대학원은 출퇴근제가 아니니 이걸 쓴 사람은 아마 이공계겠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상황이 저절로 그려지는 것이야말로
수사(修辭)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생각한다.
올리면 쓴 사람에게 실례일까 해서 지금껏 갤러리 한구석에 썩히고 있었으나, 생각해보면 인터넷에는 에타 캡쳐 유머짤들이 무진장 많이 나돌아다니니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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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 안 맞는 게 싫다고 글머리에 써 놓고 앞뒤 안 맞는 소리 써 놨으면 어쩌나 다시 검토…….
남 욕은 이래서 안 할수록 좋다. 남의 흉이 하나면 내 흉은 백이다.
괜히 섣불리 욕하다가 자기검열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하자.